전염병 역사와 교회의 삶

교회사 여행

전염병 역사와 교회의 삶

질병의 재앙을 연대와 배려의 기회로

2025. 0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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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했고, 우리의 일상을 망가뜨렸고, 지금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다. 그런데 치사율 높은 이러한 전염병이 우리 시대에 처음 창궐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질병의 역사임을 증명하듯, 전염병은 교회의 역사 초기부터 있었다서기 65년과 165~180, 그리고 241~266년에 미지의 악성 전염병이 로마 제국에 발생했다. 165~180년에 걸쳐 유행한 전염병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 시대에 창궐하였기 때문에 이른바 안토니누스 페스트라고 불렸다. 이보다 더 심각한 전염병이 241~266년에 유행하였는데,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이 시기의 전염병은 그것과 연관된 글을 쓴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누스의 이름을 따서 후대에 치프리아누스 페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 시대의 전염병은 불행하게도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교 발전에 불리하게 작용하였고, 그리스도교 박해의 또 다른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 교부(155~220)는 그의 호교론에서 로마인들이 전염병을 포함해 모든 재난과 불행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의 탓으로 돌렸음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테베레강이 제방을 넘어 범람하면, 나일강이 경작지로 넘쳐흐르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으면, 지진이 일어나면, 기근이 들면, 전염병이 창궐하면, 즉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사자들에게(Christianos ad leonem)라고 외친다.”

 그런데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교인들은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매정하게 환자들을 팽개치고 도망간 이교도들과는 달리, 오히려 이웃 환자들을 돌보고 간호하다가 자신도 죽음을 맞는 애덕 행위를 실천했다는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주교(264/5)의 편지 내용이 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박해가 끝날 무렵 황제 막시미아누스 치하(286~305) 또다시 전염병이 돌았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주교는 그의 교회사에서 전염병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있다. 통치자들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했고 그것을 표시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도 그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고 매장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도교 고대 시기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전염병은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재위 527~565) 치하 때 541년부터 770년까지 15년에서 25년 간격으로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이 전염병은 흑사병이 창궐하기 이전 유럽에서 가장 큰 고대 전염병으로 간주하였는데, 로마에까지 쳐들어온 이 전염병으로 5902펠라지오 2세 교황(재위 579~590)이 사망했다. 교황으로서는 전염병의 첫 희생자이다.

 

그래서 그의 후임자 대 그레고리오 교황(재위 590~604)590년 교황 선출 후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전염병으로 실의에 빠진 로마 백성들에게 연설한다. 그때 그는 전염병을 하느님의 채찍, 하늘의 진노의 칼로 비유하며, 죄인들의 회개와 개과천선을 요구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상기시키며 백성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교황은 하느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로마 신자들을 신분에 따라 일곱 지역으로 나누어서 연송(Litaniae)을 바치며 행렬을 하도록 명하였고, 그도 친히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에 보관되어 있던 성모 마리아 이콘을 들고 이 참회 행렬에 참여했다. 전설에 따르면, 행렬 셋째 날, 사람들이 하드리아노 황제의 무덤(Castel Sant'Angelo, 천사의 성)을 지나갈 때 갑자기 천상의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성벽 위에 나타난 성 미카엘이 손에 들었던 검을 칼집에 다시 집어넣는 광경을 보았다. 이것은 성모님의 청원으로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하느님의 진노가 거두어졌음을 뜻하는 것이었고, 극성을 부리던 전염병은 그날에 끝났다고 한다.

 

또다시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간 전염병은 14세기에 다시 나타났다. 소위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는, 짧게는 1346년부터 1353년까지, 길게는 19세기까지 발생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피렌체의 보카치오가 얼핏 암시하듯, 페스트를 인간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처벌하기 위한 하느님의 벌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이유에서 생겨났다고 믿게 된 전염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또는 그러한 재앙을 피하려고 요구된 신앙의 응답 행위중의 하나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편타고행(Flagellantentum)이었다.

 

그리고 페스트가 퍼지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극복할 수 없었고, 교회 기관들이 페스트 환자나 희생자를 돌볼 능력이 없는 곳에서, 자구적으로 생긴 것이 바로 오늘날 연령회와 같은 형제회였다. 곧 환자 간호와 장례, 고아 보호를 임무로 유럽의 각 나라에서 형제회가 자발적으로 결성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페스트에 대한 공포로 미신과 점성술에 의지했고, 이른바 페스트 부적(Pestamulett, Pesttaler)’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페스트 시대의 공포는 조형 예술에서도 표현되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은 그리스도의 수난, 지옥의 고통, 최후 심판, 벌을 내리시고 화내시는 하느님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은 이른바 죽음의 무도(Totentanz, Danse macabre)’라는 그림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페스트 시대에 많은 사람은 신앙 안에 굳게 머물려고 하였으며, 특히 성인들께 보호와 전구를 요청하였다. 페스트의 위험에서 도움을 주는 수호성인들을 언급하자면,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가톨릭 신앙에는 언제나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시는 조력자인 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 세바스티아노, 성 로쿠스, 성 안토니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성사 집행 중에 페스트에 의한 전염으로 많은 본당 신부들도 죽었는데, 반면 그 죽음이 두려워 사직한 신부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1348, 대 흑사병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전염병은 간헐적으로, 그러나 끊임없이 전 세계에 유행했는데, 17세기에 비로소 사람들은 세속적 및 영적 측면에서 질병에 대한 예방 및 보호 조치, 무엇보다도 간병인과 사목자의 행동에 대한 올바른 지침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한 예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막시밀리안 주교가 1680년에 반포한 전염병 대응 지침서는,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본당 신부와 보좌 신부가 먼저 착한 목자로서 최고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과 본보기를 따라 그들의 목숨을 바쳐야 할 의무가 있고,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목적 봉사를 하기 위한 상주 의무가 있다고 상기시킨다. 그리고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먼저 집행해야 하는데, 특히 고해성사 때 전염의 위험이 가장 크기 때문에 칙서는 성사의 질료와 형상에서 특별한 제한을 권한다. 곧 임박한 죽음의 위험을 고려할 때 고해는 간결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줄지어 기다리며 이어지는 고해는 피하도록 권한다. 그리고 영성체 때 작고 긴 숟가락으로 성체를 환자의 입에 넣거나, 성체포나 종이를 접어 성체가 그 속에 미끄러져 입으로 영하게 하는 방법들을 추천하고 있다. 또한 지침서는 페스트에 대항하는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교송으로 끝을 맺는다.

 

“O piissima Stella maris, in peste succurre nobis.”

오 지극히 자비로우신 바다의 별이시여, 페스트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칙서 <모든 형제들에게>는 코로나19 전염병과 같은 전 세계적 재앙은 이제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일종의 징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임을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보다 더 나쁜 것이라는 이 회칙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코로나19 위기나, 혹시 앞으로도 유행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전염병의 위기를, “연대와 배려의 자세, 곧 착한 사마리아인이 지녔던 이웃의 자세로 만들어야 하겠다.

 

바다의 별이신 성모 마리아님, 코로나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도와주소서. 아멘.”

 

 

Profile
수원교구 사제. 독일 뮌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세계교회사와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미사통상문을 위한 라틴어》가 있으며, 역서로는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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