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5월 9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 앞에서 주님 승천 대축일 저녁 기도회를 주례하며,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를 통해 2025년 희년禧年을 선포했다. ‘희망’이라는 주제가 담긴 이 칙서에 따르면, 희년은 올해 12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이 열리며 시작되어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2025년 희년을 맞아서 희년의 초기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희년의 역사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1294~1303년 재위)의 시대로 소급된다. 교황은 세기가 바뀔 무렵인 1299년, 로마를 방문한 한 무리의 순례자들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는 레위기 25장 8절에 착안하여 그리스도교를 위한 특별한 해를 선포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1300년 2월 22일, <Antiquorum habet fida relatio> 칙서를 통해 앞으로 100년마다 희년을 선포할 것을 선언했다. 교황이 1300년에 희년을 선포한 또 다른 이유는 주로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정이었다.
첫째, 그해에 매우 강력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집이 무너져 잔해 속에 묻혀 죽을까 봐 두려워하며 도시와 성곽 지역을 떠나 넓은 들판에서 생활했다. 교황은 이러한 재앙을 피하고 하느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많은 고통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성년을 제정했다.
둘째, 교황은 성년 동안 로마로의 대규모 순례를 장려하며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로마를 순례하는 것이 신자들의 신앙을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교황권의 중심지로서 로마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셋째, 당시 교황과 여러 유럽 세속 군주들 간의 권력 투쟁이 심각했는데, 교황은 희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재확인하고,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고 했다. 특히 프랑스 왕 필립 4세와의 갈등 속에서 교황의 권위를 부각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마로 몰려드는 대규모 순례 행렬은 로마 교회와 도시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00년 희년의 주제를 “겸손과 회개의 해”로 삼은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의 칙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안의 영원한 기억을 위하여.
고대의 신뢰할 만한 기록에 따르면(Antiquorum habet fida relatio), 로마에 있는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참배한 이들에게 큰 사면과 죄의 대사가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본인의 마땅한 직무에 따라 모든 이들의 구원을 간절히 원하고 이와 같은 사면과 대사를 모두 인정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하며, 이를 사도좌의 권위로 확증하고 승인합니다. 따라서 지극히 복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들이, 로마에 있는 그들의 대성전이 더욱 신심 깊게 신자들에 의해 자주 참배될수록 더욱 공경을 받고, 신자들 자신은 이러한 참배를 통해 더 많은 영적 은혜를 받는다고 느끼도록, 본인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두 사도의 공로와 권위에 의지하여, 우리 형제들의 조언과 사도좌의 충만한 권한을 바탕으로, 이제 막 지나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축일로부터 시작된 올해 1300년과 앞으로 100년마다, 경건하게 이 대성당들을 방문하는 이들과 진실로 참회하고 고백하는 이들, 또는 앞으로 참회하며 올해와 100년마다 이러한 방법으로 참여할 이들에게 본인은 그들의 모든 죄에 대해 완전할 뿐만 아니라 더욱 너그럽고 가장 완전한 용서를 허락하며 앞으로도 허락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부여한 이 대사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로마 시민이라면 연속적이든 간헐적이든 적어도 30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이 성전을 참배해야 하고, 순례자나 외국인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15일 동안 참배해야 한다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각자는 이 성전들을 더욱 신심 깊게 많이 참배할수록 더 큰 공로를 얻게 되고, 더 효과적으로 대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 성 베드로좌에서 교황 재위 6년, 2월 22일에 공포함.”
그런데 이후 클레멘스 6세 교황(재위 1342~1352년)은 희년의 간격을 100년에서 50년으로 줄여 1350년을 희년으로 지내려고 했다. 그의 칙서 <Unigenitus Dei filius>는 유럽에 흑사병이 발생하기 전 1343년 1월 27일에 반포되었는데, 교황이 희년을 50년마다 기념하려는 배경에는 로마인들의 청원이 있었다. 사실 1309년부터 클레멘스 5세 교황 재위 기간에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이주하면서, 도시들의 여왕이자 순례자들의 목적지요 모든 서유럽인의 신앙 중심지인 영원한 도시 로마는 혼돈과 폭력의 활극장, 가난하고 한가로운 시골 읍과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했고,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다. 따라서 로마 주교들은 클레멘스 5세 때부터 교황에게 로마로 돌아오도록 요청했고, 1342년 5월 클레멘스 6세가 선출된 지 몇 달 후,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동행한 로마 사절단이 아비뇽에 와서 다시금 교황에게 로마로 되돌아가도록 촉구했다. 동시에 방치된 채 빈궁해진 로마시를 위해서 희년의 간격을 100년에서 50년으로 줄여, 1400년이 아니라 1350년으로 앞당길 것을 요청했다.
따라서 클레멘스 6세 교황은 로마 사절단의 로마 복귀 간청을 들어주는 대신, 로마를 위해 희년을 선포했다. 칙서 <Unigenitus Dei filius>는 대사大赦의 초기 역사에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대사의 교리적 기초를 제시한다. 교회의 대사의 기초가 되는 보화의 주된 원천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인류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모 마리아 및 성인들의 공로이며, 이 보화는 베드로와 그의 대리자가 대사의 형태로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특히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에게 더욱 열성적으로 공경을 드러내고 그분들의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사도들의 대성당 및 라테란 성당 방문을 권한다.
칙서에서는 대사를 "죄에 마땅한 잠벌에 대한 용서"로 정의하면서도, "모든 죄에 대한 용서"로도 표현하며, 대사 교리의 발전 과정에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희년을 50년으로 앞당기는 근거를 인간의 짧은 수명과 성경에 두고 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주님께서 50년째의 해를 사면과 기쁨의 희년으로 삼으라고 명하셨으며(레위 25,11), 50이라는 숫자가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특별히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사를 얻기 위해 로마인들은 적어도 30일, 순례자나 지방 도시 시민이라면 15일 동안 사도들의 대성당을 방문하도록 권하며, 만약 순례 여행을 시작한 사람이 타당한 이유로 로마를 방문할 수 없거나 도중에 사망하거나 언급한 날을 채우지 못한 채 로마를 떠나는 경우에도, 길에서 진정으로 참회하고 고백하면 대사를 베풀어 준다. 그런데 클레멘스 6세 교황은 1348년 유행된 흑사병의 감염 위험에 대해 충분히 알았지만, 희년 연기나 취소를 하지 않았다. 결국 1350년 희년에 로마 순례자들이 순례 여행 중에 사망한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게다가 귀로 중의 순례자들이 새로운 전염병을 유행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이후 우르바노 6세 교황(재위 1378~1389년)은 1389년 4월 8일, 교서 <Salvator noster Unigenitus Dei Filius>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33년간 세상에 살았던 것에 근거하여 33년마다 희년을 거행하도록 정했다. 이후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464~1471년)은 1470년 4월 19일 <Ineffabilis Providentia>라는 교서를 통해 ‘성년Annus Sanctus’이란 용어를 사용하도록 제안하면서 25년마다 성년을 거행하도록 했는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2025년은 325년 5월에 시작된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모든 교회가 교회 일치에 힘쓰고, 온 세계가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이룩하는, 희망이 넘치는 희년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