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

“저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그가 그분을 만난 뒤로 -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에필로그)

나는 사마리아에서 태어났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보통 없다고 대답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다.

다섯 번 결혼을 한 뒤 새로 동거를 시작할 때부터는 이름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안에서는 어이’, 밖에서는 저 여자로 통하기 때문이다.

 

사랑은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동거인은 멀쩡한 내 이름을 놔두고 항상 어이’, ‘이봐하고 나를 부른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해 몇 번 불만을 표시했으나 그는 그때만 알겠다고 할 뿐 고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싸우기 지쳐 그냥 그러려니 지내 온 지 오래다.

 

바깥 사정도 그에 못지않게 어두워서, 사람들은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수군거리기 바쁘다. 내가 결혼을 다섯 번 하든, 열 번을 하든 그들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그러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도 전혀 없으니 그 누구도 인사하지 않는다. 뒷말 하는 걸 알면서도 그토록 오랫동안 참고 견디다 보니 그 집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불안감에 가슴이 뛴다.

 

우물물을 떠 오는 것은 하루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나는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매일 해가 중천에 뜬 정오 무렵에 우물로 이어지는 마을길이 아니라 외곽에 있는 들판을 돌아서 가야 했다. 안 그래도 물동이는 무거운데, 단지에 물이 가득 차면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먼 길을 돌아가는 동안 최대한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물을 너무 많이 흘려 동거인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많았지만, 얹혀사는 형국인 나는 아무런 항변도 할 수가 없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도 이름이 있었다. 어렸을 때 포목상인 아버지는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셨다. 아내를 일찍 잃고 나를 혼자 키우셨는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몫까지 두 배 이상으로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어머니가 집에 없었지만 굶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기 전에 항상 일찍 일어나셔서 점심과 저녁까지 미리 준비해 놓고 출근하셨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음식을 조절해서 먹는 방법을 배워야 하긴 했지만.

 

아버지는 항상 주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바쁜 와중에도 정기적으로 그리짐산에 나를 데려가 같이 예배를 드렸다. 혹여나 공동체에 필요한 옷감이 있다면 아버지는 기꺼이 모든 옷감을 대 주셨다. 아버지와 집에서 화려한 옷감을 분류할 때면, 이제 곧 그리짐산에서 축제가 있겠구나, 생각하곤 했다.

 

나이가 좀 더 차 1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나는 그리짐산 공동체에 속한 또래들과 함께 말씀 나눠 주기활동을 하곤 했다. 초막절 때마다 하는 일종의 청소년 활동이었는데, 우리 경전에 담긴 말씀을 하나 골라 작은 두루마리 조각에 쓰고, 뒷면에는 이 말씀을 받을 공동체 인원의 이름을 써서 헝겊 주머니에 넣은 뒤, 그 사람의 집으로 가져가 선물했다. 이 헝겊 주머니와, 활동할 때 입는 예쁜 의상 역시 아버지가 항상 기쁘게 후원해 주셨다. 어른들은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기특해하시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 주셨고, 어떤 어른들은 맛있는 무화과 열매를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을 지내다 사춘기가 왔을 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신앙으로 잘 극복해 나갔다.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뀐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수십 년간 밤낮없이 일하신 탓이었는지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버지를 침상에 눕히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생계는 공동체의 도움으로 몇 달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직업을 가질 수 없었으나 구걸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고, 거리의 여인이 되기는 끔찍이 싫었다. 결국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수밖에 없었다. 급작스럽게 치른 혼인은 경제적으로 급한 불은 꺼 주었지만 나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달콤한 신혼이 지나가자 남편은 밥 먹듯 나를 구박했다. 이 괴로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나는 이 남자와 파혼하게 되었다.

 

혼인을 성급하게 했기에 그 과거로 인해 내가 선택할 남편의 폭이 훨씬 좁아졌다. 부디 나에게 짐이 되는 사람만은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며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의 혼인을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나를 때리거나 심하게 모욕하지는 않지만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 다음 날 늦게까지 짐승처럼 누워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그마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낙 없이 지내고 있는 참이다.

 

평소처럼 먼 길을 돌아 지친 채로 힘겹게 우물에 간 어느 날, 그분을 만났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우물가에 유다인처럼 보이는 분이 나보다 더 지친 기색으로 앉아 계셨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다른 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서둘러 내 할 일만 하고 돌아가려는데 그분께서 갑자기 나에게 말씀을 건네셔서 화들짝 놀랐다. 처음 보는 유다인이 나에게 말을 걸다니…….

 

선생님은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그분은 내 눈을 유심히 바라보시며 은은한 미소를 지으셨다.

사람의 웃음을 본 적이 언제였나……. 맞다. 아버지가 새 옷을 가져오셨을 때 건네신 웃음이 내 기억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어서 돌아가려는데, 그분은 물동이를 챙기는 나에게 이렇게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명의 물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고, 그분은 아까와는 달리 진지하게 나의 답을 기다리시는 듯했다. 설마 내 물동이를 쓰시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럼 이 지긋지긋한 물 긷는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망설임 없이 그분께 말했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분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시는 듯했다. 이윽고 말씀을 이어 나가셨다. 그분께서 나의 과거를 모두 알고 계셔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전처럼 달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분께 더욱 많은 말씀을 듣고 싶었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 예배 등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이어 나가셨고 하느님은 영이시며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 나를 옭아맸던 과거에서 해방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분은 분명 내 복잡한 과거를 훤히 아시면서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이 모든 것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도 충분히 진실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

 

* * *

 

자 이제 슬슬 나가 봐야 해! 말씀들 잘 챙겨!”

 

초막절 말씀 나눠 주기를 나가기 위해 친구들이 준비물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준비된 여러 말씀 주머니가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아직 주머니에 담기지 않은 말씀 조각이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정해진 양보다 하나를 더 만든 모양이었다. 나는 어떤 말씀인지 궁금하여 말씀 두루마리를 살펴보았다.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15)

 

나는 이 말씀이 왠지 모르게 눈에 들어와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져왔다.

 

* * *

 

그 순간 이 말씀이 생각나 혹시나 내 앞에 있는 분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닐지 궁금해졌다.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순간 넋을 잃고 그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그분을 보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기다리던 분을 나만 뵐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피하던 그 길로 달려갔다. 이전에는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두려움에 가슴이 뛰었지만 지금은 설렘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 집 저 집을 문을 두드려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렸다. 나는 어느새 30여 년 전 행복한 모습으로 말씀을 나눠 주던 어린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물동이를 놓고 왔다는 사실은 깨달은 것은 정신없이 모든 사람에게 그분을 알린 한참 뒤였다.

 

* * *

 

3년이 지났다.

 

나는 그분을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 이후 일상으로 돌아와 그분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물론 달라진 점이 있었다. 더는 우물을 길으러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과 용기를 내어 교류를 시작한 나는 이제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아픔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유다의 최고 의회에 압송되었다는 소식이 이곳 사마리아에도 들려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분은 지금 괜찮으실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훌륭한 예언자를 잡아간 것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며 그분을 뵙기 위해 황급히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수소문 끝에 그분이 결국 십자가형을 받게 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애끓는 마음으로 그분이 계신다는 곳을 찾아 하염없이 언덕을 올라갔다.

 

멀리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보았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야 차차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데…… 그분께 제대로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가슴이 미어졌다.

 

이미 사람의 형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진한 상태이신 그분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려 했다. 그분은 간혹 곁을 지키는 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 듯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병사들 사이를 비집고 그분 가까이 가자 드디어 그분의 말씀이 들렸다.

 

목마르다.”(요한 19,28)

 

눈물이 앞을 가린 나는 이 말씀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 * *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 * *

 

그분께서 나에게 물을 청하셨을 때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그분을 겨우겨우 다시 봤는데, 나는 목말라하시는 그분께 드릴 물이 없었다.

 

* * *

 

집에 돌아와 지금까지 간직했던 말씀 주머니를 오랜만에 열어 보았다.

먼지가 쌓인 주머니였지만 안에 담긴 두루마리는 아직도 새것처럼 깨끗했다.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15)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올라오는 눈물을 다시금 훔쳤다.

그리고 이 말씀 쪽지를 뒤집어 보았다.

 

말씀 쪽지 뒷면엔 내 이름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현재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메시지를 연구하는 것이 제 주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 안에는 세속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과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능한,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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