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구약 성경을 가르쳐 주신 교수 신부님께서 이야기 하나를 해 주셨는데, 지금도 가끔씩 그 이야기가 생각나곤 합니다. ‘법’에 대한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아주 착한 사람을 가리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그 사람은 참으로 법대로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법이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금지 조항’을 의미하고, 참된 선이란 그러한 법을 초월하는 영역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 법이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두 나라는 법이라는 말을 두고 상반된 이해를 보여 줍니다.
‘일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일상을 하루하루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굴레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 혹은 비일상을 즐기거나 꿈꾸며 살아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이 매우 소중한 것이며, 지켜 나가야 하는 삶의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과거에 누리던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평범한 일상이란 이전과는 다른 무게를 가지게 됩니다.
신학교 안에서 살아가는 저희에게도 일상은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저희에게 평범한 일상은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법을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길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는 저희가 살아가는 일상을 ‘하느님께서 사제직으로 불러 주신 양성의 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의 일과
신학교의 대략적인 일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 6시에 기상 음악이 울리면 30분 안에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성당으로 향합니다. 6시 30분부터 아침 기도를 함께 바치고, 기도가 끝나면 당일 복음으로 30분가량 묵상을 합니다. 그다음에는 미사가 이어집니다. 미사가 끝나고 8시가 되면 함께 아침을 먹습니다. 식사 후에 잠시 쉬다 보면 9시 수업이 시작됩니다. 대학원생 때부터는 논문 때문에 수업 시간이 조금 줄기는 하지만, 학부생들은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수업이 꽉 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12시 반부터 낮 기도와 양심 성찰, 점심 식사가 시작됩니다. 이후에는 잠시 쉬었다가 학년 체육(양성 과정의 일환으로 요일을 정해 의무적으로 진행)을 하거나, 정해진 일거리 혹은 개인 공부를 합니다. 오후에 수업이 있으면 수업 듣습니다. 5시 20분부터는 저녁 기도를 바치고 성체 조배를 드립니다. 6시부터 저녁 식사, 7시부터 묵주기도, 7시 반부터 끝기도와 영적 독서, 8시부터는 대大 침묵 속에서 개인 공부를 합니다. 밤 10시 반이 되면 씻고 취침 준비를 한 뒤, 11시에 다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사실 신학교의 일과를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나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과거의 일상을 버리고 신학교의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러한 일상이 사제로 자라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확신하며, 학생들이 이를 체득하고, 내재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1학년들이 이런 제 마음을 얼마나 알아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말이지요.
사실 신학생 대부분이 이처럼 어려운 일과를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학년들도 초반에는 힘들어하지만 1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규칙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배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이 언제나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무너지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지요.
일상은 언제 무너지고 흐트러질까?
스스로와 신학생들의 일상을 돌아보니, 무너짐과 흐트러짐이 찾아오는 순간에는 대체로 세 가지 요인이 있는 듯합니다. 그중 첫 번째 요인은 건강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아플 때에는 일과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고, 감기나 작은 부상만으로도 짜증이 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작은 이상만 있어도 일상의 리듬은 흐트러질 수 있지요.
따라서 평소에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됩니다. 특히 기초 체력이 좋지 않아 신학교의 일과를 따라가기 힘든 경우라면 더욱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제직이란 내가 하고 싶을 때에만 수행하는 직무가 아니기에, 언제든 하느님 백성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체력을 키우는 것 역시 주요한 덕목으로서 신학교 양성 과정의 일부가 됩니다. 결국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 관리와 건강 관리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일탈의 욕구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자 하는 음주의 욕구,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나태의 욕구, 게임이나 만화 혹은 다른 취미에 대한 욕구 등 수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욕구에 정신없이 몰두할 때, 우리는 일상을 잊은 채 흐트러진 삶을 살기 쉽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있을 때에는 이러한 욕구들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외적인 상황에 던져질 때, 우리의 욕구는 이내 고개를 들고 일상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대개 신학교 행사나 축제, 외출, 혹은 방학 중에 마주합니다. 이후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지나치게 음주를 하는 경우도 있고, 신학교에서의 규칙을 완전히 잊고 나태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욕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욕구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주체로서 욕구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신학교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 일상을 통해 일탈의 충동을 견디고 다스리는 힘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은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견디기 위한 준비이며, 이는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한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분주함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 미뤄 둔 일들을 처리해야만 할 때 우리는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학생들은 시험 기간이 되면 눈앞에 닥친 ‘공부’라는 과업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형제들과의 관계나 신학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밤 11시가 되면 무조건 취침을 해야 하는데도, 화장실이나 침실에서 몰래 손전등을 들고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규칙을 어기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다음 날의 기도와 묵상, 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이지요.
눈앞에 닥친 일이 너무 많으면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하고 정말 필요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쁠수록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살펴보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며, 일이 밀리지 않도록 제때 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의미를 생각하기
지금까지 일상을 무너뜨리는 세 가지 요소인 ‘건강’, ‘일탈의 욕구’, ‘분주함’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신학생들에게 신학교의 일상은 소중한 만큼 절대적으로 지켜 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과일지도 모르지만, 그 일과를 살아가는 저희에게는 ‘하느님을 향해 성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일상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 우리가 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지, 평범한 일상을 지켜 가기를 원하는지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삶의 방향이 일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흐트러짐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겹게 보이는 시간일지라도, 그 안에 의미를 담아 낼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는 여정이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일상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시기를 빕니다. 지켜 가고 싶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매일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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