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모든 이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오늘날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훨씬 그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이 글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겸손의 개념을 분석한 후 이를 진리와 온유함으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겸손이라는 미덕을 배울 수 있을까요?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살펴봅시다.
글 | 마르타 메디나 발게리아스Marta Medina Balguerías (교황청립 코미야스 대학교)
일반적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성찰하는 힘이 약해지고, 영적인 차원과 질문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능력이 쉽게 활성화됩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 즉 의미, 정체성, 목적 또는 희망에 관한 질문과 더 온전히 마주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Ortega는 “생각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 신념 속에 있으며, 그 신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위기는 우리가 쌓아 올린 우리의 토대인 신념을 흔들고, 그것이 정말 좋은 토대인지 아니면 더 견고한 다른 토대가 있는지 자문하게 만듭니다. 위기는 어려운 순간이지만, 성장을 위한 절호의 순간(카이로스kairos)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쁜 생활 속에서 나의 삶과 그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함, 침묵, 묵상, 기도의 순간을 찾기 어려워합니다. 늘 더 깊이 성찰해야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할 기회이며, 앞으로도 묵상하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인생에 항상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특히 지금 같은 위기의 시기에 더 중요한 ‘겸손’이라는 열쇠를 제안합니다.
피상성에 대한 경고
오늘날 많은 사회가 겉모습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많은 사상가가 우리가 사는 피상적인 사회에 대해 경고해 왔습니다. 지금처럼 우리의 생활방식을 위기에 빠뜨리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애초에 왜 이렇게 살기로 결심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피상적인 삶, 외모를 중시하고, 소비주의에 집착하는 걸까요?
비록 잘못된 방향이지만, 이러한 생활방식은 욕망이 인간 안에 내재된 것이라는 인류학적 진리에 응답하려고 시도합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현실(사람, 사물, 약속 등)에 매료되어 욕망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 역동성은 인간의 ‘별난’ 성격을 말해 줍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헌신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충족감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거기에 이끌리게 됩니다.
여기서 피상성의 문제가 작용합니다. 우리는 가장 피상적인 욕망의 차원에 머무르며, 욕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을지라도 ‘사랑’하기 쉬운 것들에 매료되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시스템은 이러한 생각을 이용하여 이론적으로 우리가 더 많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물건이나 경험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무한한 욕망의 특징은 필연적으로 무한한 ‘소유’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소비주의는 좀처럼 억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망의 가장 깊은 뿌리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충족감을 얻기 때문에 욕망은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게 합니다. 사랑은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므로 욕망도 무한하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과감하게 진정성 있게 바라보아야 하며, 받으려는 마음뿐만 아니라 기꺼이 베풀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앞서 언급한 이 두 가지 특성,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진정성)과 목숨을 걸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우리는 거절당하거나 고통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상적인 욕망에 만족하고, 물건이든 관계에서든 깊이 파고들지 않은 채 그저 소비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한계를 정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온전한 인간의 발달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구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나 자신이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기 위해 ‘보여 주기식 행동’이나 태도(또는 속임수)를 갖는 경향이 빈번해집니다. 그 욕구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일단 피상성의 세계에 들어가기로 동의하면 거기서 벗어나 자신의 진정성을 찾아 나서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두 번째 문제로 나 자신을 내어 주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충동에 뿌리를 둡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세상의 중심이며,
실제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이기적인 충동을 느낍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내 뜻에 따르게 만들면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믿게 됩니다.”
─ 마르타 메디나 발게리아스, 《겸손한 사람들에게 이끌림Atraídos por lo humilde》 中
요약하면,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고통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면하면 자기 자신이 원래 다른 사람인 척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소모해 버리는 피상적인 삶을 선호합니다. 분명 이 전략은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외출할 일이 거의 없는데 남들에게 보여 주기식 행동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 물건을 소비하는 일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자기 내면을 돌보지 않고 진정성을 찾지 않는다면 장기간 겪을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위기가 하는 역할이 한 가지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필요하다면 우리의 길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려 봅시다. 이는 우리 삶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교훈도 주었습니다. 이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피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더 견고한 기반을 다질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찰한 것에 따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글은 스페인 학술지 <Razón y Fe>에서 발췌 및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원문 출처 ■
Medina Balguerías, M. . (2020). La humildad como aprendizaje de la crisis.
<Razón Y Fe> 282(1447), 167-177.
https://revistas.comillas.edu/index.php/razonyfe/article/view/13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