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④ 하느님, 이건 제 ‘탈렌트’가 아닌데요?

신학 칼럼

월간 특집④ 하느님, 이건 제 ‘탈렌트’가 아닌데요?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발견한 ‘침묵’이라는 선물

2026.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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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탈렌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혹시 내 것이 아니다.라며 외면한 탈렌트가 있지는 않았나요?

 

💘 예상치 못한 자리, 성경을 가르치던 사제는 성모 신심을 말하게 됩니다. 낯설던 시간 속에서 말이 아닌 침묵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 오늘의 글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탈렌트를 찾아가며, 우리의 신앙을 다시 묻습니다.

 


 

탈렌트, 도대체 몇 개나 받았을까?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마태 25,14-15)

 

삶 속에서 자라난 성모 신심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내가 그동안 성모님을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았다. 그 순간, 이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의 탈렌트에 대한 물음이었다.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탈렌트는 몇 개나 될까?
  •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잘 사용하고 있을까?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그 탈렌트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 알고 있다면 나는 그 탈렌트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성경 안에서 내가 알고 있던 탈렌트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 삶의 대부분을 성경을 보며 하느님의 모습과 예수님의 삶을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성경이 우리의 신앙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시며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그리고 그분을 따르고 닮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하고자 노력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사랑이 곧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전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성경을 강의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것이 나의 탈렌트라고 여기게 되었다. 아니,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탈렌트임이 분명했다.

 


 

성모님… 솔직히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성모님의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성모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예수님의 이야기와 사도들의 이야기에는 집중하면서 성모님의 이야기에는 소홀했다.

 

그 결과 성모님에 대해서는 덜 고민했고, 덜 바라보았으며, 덜 느꼈다. 성모님과 관련된 것들 역시 내 관심과 시선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래서 성모 신심도, ‘레지오마리애푸른군대와 같은 신심 단체도 내 몫이 아니라고, 내 탈렌트가 아니라고 여겼다.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것을 나의 탈렌트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 두고 있었다.

 


 

또 하나의 탈렌트, 확신 없이 찾아오다

 

신학생 시절부터 유학 10, 그리고 교구청에서 성경 교육 7년을 마치고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되었다. 가톨릭목포성지를 맡으면서 그 안에 있는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이라는 피정 센터도 함께 맡게 되었다.

 

주교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보내시면서 다양한 성경 강의를 통해 피정 센터와 성지를 활성화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광주대교구의 레지오마리애를 책임지는 담당 신부가 되었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단체를, 관심이나 열정도 없었던 성모 신심을 이제는 말해야 하고 배워야 하는 자리에 놓이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내가 원하지 않았던 탈렌트였다. 지금 가진 탈렌트조차 감당하기에 벅찬데 또 하나의 탈렌트가, 아니 십자가가 나에게 주어졌다고 느꼈다. 레지오마리애 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 본 적도 없었고, 묵주 기도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을 비우기 위해 무심히 바치는 기도 정도로만 여겨 왔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혀 주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나에게 또 하나의 탈렌트를 맡겨 주셨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3, 낯선 탈렌트와의 동거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교본을 정독하고, 성모님의 마음과 생각, 삶과 여정을 묵상하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이것이 나의 탈렌트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고, 그분께 배우며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고(마태 25,25 참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금업자들에게 맡기듯이(마태 25,27 참조) 레지오마리애 단원들에게 배우고, 감동하며 웃고, 대화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더 넓어진 자리, 더 많아진 책임

 

광주대교구의 레지오마리애는 국가평의회인 세나뚜스Senatus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신자도 1만 명에 이른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처럼 그만큼 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다 보니 교육과 방문, 질문과 걱정이 많다. 담당 사제로서 강의를 하고, 훈화를 전하고, 때로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시와 명령, 훈계와 질타 역시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사제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교도(敎導, Magisterium)의 직무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해야 할 말을 전하지만,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로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모님의 삶을 떠올린다.

 


 

성모님,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나요?

 

침묵의 여인이시며 관상의 여인이시고 순종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본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알렸을 때(루카 1,26-38 참조),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에 대해 천사에게 들은 말을 전했을 때(루카 2,15-20 참조), 사라졌던 소년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았을 때(루카 2,41-52 참조), 성모님께서는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곰곰이 생각하셨다.

 

분명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설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침묵하신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바라보신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응답하신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침묵, 회피가 아닌 선택

 

할 말이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고통이다.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인내와 끈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성모님의 침묵은 무지나 회피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침묵이 아니라, 믿음으로 선택한 침묵이다. 하느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머무르는 침묵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천사의 이러한 인사말을 마음에 간직하며 되새기는 기억의 침묵이다.

 

그 침묵 안에서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편견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다. 그분의 삶은 이렇게 침묵으로 이어져 있다.

 


 

오늘의 나, ‘침묵이라는 탈렌트를 배우는 중입니다

 

요즘 나는 말을 많이 하며 살아간다. 강의와 강론, 훈화를 하고, 지시를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듣기보다 말하는 데 익숙해지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설득하고 토론하는 데 더 힘을 쏟게 된다.

 

그러나 성모님의 침묵 안에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계셨다. 그분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성모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셨다. 침묵하시고, 바라보시고, 믿으시며 따르셨다.

 

나는 성모님을 통해 또 하나의 탈렌트, ‘침묵을 배워 간다. 더 잘 듣기 위해 침묵하고, 내 생각만이 옳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묵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내 안에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는 그저 당신께서 원하실 때 쓰이는 도구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침묵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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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광주대교구 사제. 가톨릭목포성지 담당으로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일상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나의 삶을 직시할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과 순례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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