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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스쳐 지나가고, 어떤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또 어떤 문장은 사람을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 엄지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가는 시대. 청년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챌린지는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 한 문장을 곱씹고 함께 나누며 자신의 신앙과 마음을 표현한 청년들. 그 안에서 텍스트는 ‘나’와 ‘너’를 이어 주는 통로가 됩니다. |
엄지손가락 시대, ‘텍스트’를 다시 만나다
찬미 예수님! 저는 올해 사제품을 받고 인천교구 서운동 성당의 보좌 소임을 맡고 있는 이현우 마르코 신부입니다. 서품 이후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이제야 제 일상에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가톨릭북플러스’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이달 월간 특집 주제는 ‘좋아하는 문장, 텍스트로 내가 드러나는 시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짧은 영상 콘텐츠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제로 서품받기 전, 핸드폰 사용이 제한되었던 신학생 시절에는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독서하며 마음의 양식을 쌓았던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캐스리더스(6기)를 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러나 서품받은 지금은 한 손에 핸드폰을 꽉 쥔 채 엄지손가락 하나로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저 자신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정말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요즈음입니다. 사제인 저도 이런데, 가정과 직장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여러분에게 독서가 얼마나 쉽지 않을지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숏폼을 갈급하는 시대에, 우리는 종종 깊이 사유할 여유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잠시 속도를 멈추고 마주한 텍스트를 천천히 곱씹는 순간, 그 문장에 매료된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좋은 글을 읽고 곱씹고, 때로는 메모도 하며 ‘텍스트’와 구체적으로 만날 때 내가 변화되는 소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루 한 줄, 청년들의 마음을 열다
저는 올해 본당의 교리 교사, 청년들과 함께 하나의 챌린지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가톨릭출판사에서 출간한 《100일 동안 깊어지는 가톨릭 신앙생활 챌린지 북》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챌린지 방식은 단순합니다. 하루에 한 챕터씩 필사하고, 그날의 묵상과 짧은 단상을 작성한 뒤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공유하는 것입니다. 처음 챌린지 참여를 권유했을 때는 필사를 부담스러워하는 청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구애 끝에 총 26명이 모였습니다!

이 챌린지는 기도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신앙 습관을 형성해 보자는 단순한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년들은 바쁜 일상 안에서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이를 위해 시간을 따로 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함께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청년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우려는 기우였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이 챌린지는 단순히 신앙 습관 형성을 넘어, ‘텍스트 앞에 선 나 자신’을 마주하고, ‘텍스트로 변화된 너’를 만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점은 챌린지가 이어질수록 청년들의 신앙적 고민과 진지한 성찰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짧은 묵상 글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솔한 고백들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서로의 고민과 묵상들을 읽으며 공감 버튼을 눌러 주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제라고 해서 신앙이 더 깊거나, 평신도라고 해서 신앙이 더 얕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자리에서 만난 하느님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깊이와 울림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의 진실한 고백들은 오히려 제 마음을 더욱 크게 움직였습니다.
서운동 성당의 어느 청년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왜인지 성인이 되고 난 뒤 고해성사에 거리감과 거부감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해야 주님께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저는 고해성사를 사랑의 성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은총을 내려 주세요.”

함께 읽는다는 건, 함께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의 짧은 문장은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대신 표현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어쩌면 상대방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일조차 점점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텍스트를 천천히 곱씹으며 읽는 일이 어려운 세상에서 글까지 쓴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글을 읽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다양한 텍스트를 마주한 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과 사건들, 특히 ‘너’를 만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어느새 텍스트에 감화되어 변화된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히 텍스트와의 만남이 새로운 ‘너’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면 더욱 값진 체험이 될지도 모릅니다. 글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시 다른 글을 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차가워진 마음을 다시 데우는 한 문장
제가 좋아하는 텍스트를 여러분과 나눠 봅니다. 요한 클리마코 성인의 말씀입니다.
“눈물은 두려움을 앗아 간다. 더 이상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기쁨의 밝은 빛이 빛난다. 이 영원한 기쁨으로부터 거룩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꽃피운다.”
― 안셀름 그륀, 《위안이 된다는 것》, <우는 것도 치유가 된다> 중에서
이 문장을 읽을 때면 하느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만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극한 사랑 앞에 엎드려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 순간에 제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은총의 눈물을 쏟아 내고 난 뒤, 어느새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평화가 피어나고, 눈물로 씻긴 자리마다 당신의 사랑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하느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짧은 문장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다가 미지근해지다 못해 차가워진 제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다시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도록 제 발걸음을 이끌어 줍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어떤 문장을 품고 살아가고 계시나요?
사진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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