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경>: 밑 빠진 항아리에 어떻게 물을 채울 것인가?

가톨릭 예술

영화 <문경>: 밑 빠진 항아리에 어떻게 물을 채울 것인가?

영화를 통해 만나는 예수님 마음

2025.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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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개봉한 영화 <달마야 놀자>는 세력 다툼에서 패한 조직폭력배 무리가 외딴 사찰로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조직의 2인자 재규(박신양 扮)를 필두로 한 다섯 명의 조직폭력배 무리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숨어 있을 곳을 물색하던 중에 한 사찰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절에서 일주일만 머물겠다고 스님들에게 엄포를 놓는데, 주지 스님(김인문 扮)은 이들을 받아 주지만 상좌승 청명(정진영 扮)을 비롯한 다른 스님들은 어떻게 해서든 저들을 절에서 쫓아내려고 합니다.

 

재규 일당과 스님들의 갈등이 깊어지자, 주지 스님은 10분 안에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이들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밑 빠진 항아리를 채우려고 애를 쓸 때, 재규는 항아리를 연못에 던져 버리고 밑 빠진 항아리에 물 채우기에 성공합니다. 가까스로 절에 남게 된 재규 일당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스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주지 스님은 불평하는 스님들을 다그치며 재규 일당이 절에 계속 남도록 합니다. 어느 날 재규가 주지 스님에게 묻습니다.

 

스님, 저희를 이렇게 감싸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에 주지 스님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 무슨 생각으로 물을 채웠느냐고 되묻습니다. 재규가 그냥 항아리를 물에 던졌을 뿐이라고 답하자, 주지 스님은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라고 말하며 재규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전합니다.

 

밑 빠진 항아리처럼 다가오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성에 차지 않는 사람,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좋지 못했던 첫인상이 인장처럼 박힌 사람, 용서가 사치로 여겨질 만큼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들게 만드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간혹 자기혐오에 빠진 것처럼 나 자신이 그러한 존재로 비추어질 때도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의 대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집단이나 무리, 혹은 시대적 흐름이나 사회적 분위기 등이 밑 빠진 항아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다가오는 존재들과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벌이는 끊임없는 씨름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동일 감독의 영화 <문경>에도 밑 빠진 항아리를 두고 어찌할 줄 모르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문경(류아벨 扮)은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인입니다.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전시 프로젝트를 성황리에 마치며 직장 내에서 문경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집니다. 하지만 문경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직원 초월(채서안 扮)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문경은 평소 성실하고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 온 초월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힘을 쓰지만, 문경을 제외한 그 누구도 초월의 처지에 관심도 두지 않고 오히려 문경이 초월만 챙긴다며 불평을 쏟습니다. 그간 쌓인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 대한 실망으로 위장병과 번아웃이 온 문경이 며칠 결근한 사이, 초월은 예정보다 빨리 퇴사하게 되고 이에 문경은 자책합니다. 문경은 마음의 치유를 얻기 위해 휴가를 내고 초월의 고향이자 자신의 이름과 같은 문경으로 3일 동안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문경에 도착한 주인공 문경은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법을 배워 나갑니다. 그곳에서 문경은 첫 만행을 시작한 비구니 명지스님(조재경 扮)과 마주합니다. 길에서 사고를 당한 강아지 길순을 매개로 문경과 명지스님의 인연이 불현듯 맺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길순을 치료해 주고 길순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여정은, 두 사람의 가슴 품은 아픈 사연을 동력 삼아, 아직 자신들의 마음에 던져 넣지 못한 밑 빠진 항아리를 조금씩 마음이란 연못으로 이끌어 줍니다. 사실 문경과 명지스님 모두, 서로가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길순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과정 안에 만나는 여러 변수를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입니다. 두 사람에게 밀려오는 상황을 긴 호흡으로 마주하며, 서로를 위해서 먼 길을 돌아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섬세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갑작스러운 변수 또한 통제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극 종반부에 유랑(김주아 扮)과 유랑의 할머니(최수민 扮)와 인연을 맺습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맺어진 이 인연을 소중히 받아들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의 밑 빠진 항아리를 마음속 연못으로 던질 줄 아는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이들이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채웠을 때, 우리는 모두 가만히 멈춰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항아리와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의 마음 안에 자신을 던져야 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입니다.

 

영화 <문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복음 속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예수님이 마주한 인물들은 대부분 당대로부터 밑 빠진 항아리 같은 취급을 받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당대의 엄혹하고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밑 빠진 항아리 같은 존재로 여기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속하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판단한 이들, 다른 이들로부터 멸시와 혐오의 시선을 당연하게 여긴 이들, 하느님 앞에 섰을 때 가슴을 치며 스스로 죄인이라 칭할 수밖에 없던 이들, 예수님을 앞에 두고 감히 다가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스스로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져서 머뭇거리던 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당신 마음의 연못으로 던지셨습니다. 밑 빠진 항아리일 필요가 없다며 그들을 하나하나 마음 깊이 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던져진 이들은 자신이 밑 빠진 항아리이든, 금이 가거나 흠집이 난 항아리이든 상관없이 예수님의 마음에 푹 잠긴 채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탄생은 밑 빠진 항아리와 같은 취급을 받는 존재들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미혼모 어머니, 노동자 양부, 헤로데 임금의 박해를 피해 달아난 난민 가족, 과부가 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 사형 선고를 받은 정치범 등등,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떠안은 속성 중에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으로부터 밑 빠진 항아리 취급을 받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밑 빠진 항아리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이들이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 때, 혹은 나 자신이 세상 안에서 밑 빠진 항아리 같은 존재로 여겨질 때, 몸소 밑 빠진 항아리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밑 빠진 항아리 취급을 받는 이들을 품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도 세상 안에서 밑 빠진 항아리 취급을 받는 이들을 기꺼이 우리 마음 안에 던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현재 영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한 사목에 힘쓰고자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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