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샤인>: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가톨릭 예술

영화 <샤인>: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루카 16,15)

2025.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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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 북한산 자락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이 담당하는 공부방으로, 인근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선생님 역할을 맡았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습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청소년 친구에게 수학을 가르쳤을 때의 일입니다. 이 친구의 수학 수업을 요일별로 여러 선생님이 나누어 맡았고, 저희는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다가오는 중간고사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친구의 수학 성적은 기대보다 훨씬 낮게 나왔고, 저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함께 자책하며, 왜 시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어느 날 수녀님께서 장문의 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다음의 내용이 가장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

 

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허탈감, 회의감, 자책감은 사실 타인을 향해 있는 감정이더라고요. 충격적이고 잔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러한 감정의 원인이 타인에게 있다고 말하지 못하고 나를 괴롭혀 위선을 떨게 하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떨쳐 버리세요.’

 

샤인, 빛나다

 

박석영 감독의 영화 <샤인>을 마주하며, 공부방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도 북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유일한 가족이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진 고등학생 예선(장해금 扮), 할머니의 임종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함께했던 성당의 두 수녀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박석영(감독). (2024). 샤인[영화]. (주)인디스토리>

 

오랫동안 예선과 교류해 온 스텔라 수녀(정은경 扮)는 예선의 할머니 임종을 지켜본 라파엘라 수녀(장선 扮)에게 예선을 특별히 챙겨 달라고 부탁합니다. 진심을 다해 자신을 챙겨 주는 라파엘라 수녀에게 예선은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고, 라파엘라 수녀 역시 예선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수도자로서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섯 살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버림을 받은 뒤, 동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예선의 집에 들어섭니다. 새별(송지온 扮)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를 두고 예선은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기보다 자신이 아이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을 앞세웁니다.

 

예선은 친구 다희(채요원 扮)의 도움으로 수녀님들에게 새별이 삼촌의 딸이라고 속이게 되고, 새별을 돌보며 수녀님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예선은 새별을 최선을 다해 돌보며 보람을 느끼며 행복해하는데, 이 지점에서 앞서 예선을 챙겨 주며 뿌듯해하던 라파엘라 수녀의 모습이 중첩됩니다. 하지만 라파엘라 수녀가 새별의 친엄마(전설희 扮)를 마주하게 되고, 예선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파엘라 수녀와 새별을 계속해서 돌보고 싶은 예선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소극적으로 개입했던 스텔라 수녀는 자신이 몸담은 성당의 본당 신부인 미카엘 신부(이용화 扮)에게 한탄하듯 이야기합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참새가 다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수녀는 그것을 밖으로 몰아보았지만 결국 참새가 문에 부딪혀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신 때문에 참새가 죽었다고 자책하듯 말하는 수녀에게, 미카엘 신부는 나중에 그 참새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 성당 밖으로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해 줍니다. 그렇게 라파엘라 수녀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예선과, 예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친엄마의 품으로 돌아간 새별은 스텔라 수녀의 자책과는 상관없이 날아간 참새의 모습과 맞물리게 됩니다.

 

공부방 수녀님에게 들었던 나를 괴롭혀 위선을 떨게 하는 감정은 영화 속 라파엘라 수녀가 예선에게 가졌던 감정, 그리고 예선이 새별을 두고 품었던 감정과 일맥상통합니다. 영화 <샤인>은 누군가를 향한 실망의 원인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기대를 품었기 때문임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 역시 신부로 지내온 시간 안에서 나를 괴롭혀 위선을 떨게 하는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순간이 잦았음을 고백합니다. 신부로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려 애쓴 순간들이, 사실은 주님 앞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종으로 나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본당 신자들을 비롯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저를 향한 평판을 신경 쓰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적이 많습니다.

 

또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나누는 과정 안에서 말씀을 직접 제 삶에 녹여내지 못한 채 그럴싸한 언어로 포장하는 데서 그친 적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 안에서 무엇보다 사목이라는 미명 하에 나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태도 안에는 하느님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 못했고,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의 일을 하기 위한 마음의 여유도 남아 있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이 느끼는 만족감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와 마음가짐은 타인을 향한 실망과 나 자신을 향한 합리화를 쉽게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공부방에서의 기억과 더불어 영화 <샤인>을 향한 감상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위선을 강하게 경고하셨음을 증언 합니다. 이는 선을 가장한 속임수라는 맥락의 위선뿐만 아니라, 앞서 고백한 신부로서의 저의 모습처럼 나를 괴롭혀 위선을 떨게 하는 감정도 함께 담아낸 경고이기도 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같은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보인 모습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또 자신들이 하는 일이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이고 있음에도 이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꾸미는 데 능숙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라 부르며 그들의 위선을 강하게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 이루어지고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의미를 진중하게 곱씹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섬세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하느님께 어떠한 영광도 전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이를 대신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 더 잘 해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 등은 겉보기에는 거룩하고 순수해 보일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위선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영화에 부녀가 극 중 잠깐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진사인 아빠(문종택 扮)가 딸(김효정 扮)을 기다리는 장면인데, 아빠 역할의 배우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관객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서적 울림을 줍니다. 수수께끼처럼 펼쳐지면서도 명확한 감정선을 전하는 이 장면은, 영화가 남기는 또 하나의 숙제처럼 다가옵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현재 영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한 사목에 힘쓰고자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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