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복음 묵상

성경 이야기

연중 제26주일 복음 묵상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40)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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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본당에 첫 주임 신부로 발령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주일 학교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시기에, 그 본당에는 놀랍게도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미사나 교리 시간에만 맞춰서 성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성당을 놀이터이자 쉼터로 여기며 성당 울타리 안에 즐겨 머물렀지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리 교사들과 주일 학교 일정을 상의하는데 제가 매번 안 된다고 말하면서 교사들의 의견에 반대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있는데 ‘왜 나는 교사들이 올린 의견에 안 된다고 계속 반대만 하지? 왜 교사들은 한 번도 안 되냐고 묻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보좌 신부 시절, 신자들이 많은 큰 본당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두루두루 쌓았던 저는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큰 본당에는 성당의 오랜 역사와 함께 잘 정리된 매뉴얼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새로 온 작은 규모의 본당은 그동안 본당 건축할 때 생긴 빚이 많아 오랫동안 빚을 갚느라 여러 가지 경험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알 수 없었고 그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 주임 신부의 의견에 따르는 가운데,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해 봐야 하는 것들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교리 교사 회합에 참석해 교사들에게 그동안 반대만 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제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습니다. 무엇이든 해 보라고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 대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지요. 또한 교사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그들이 영적으로 잘 성장하도록 기다리며 기도하겠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이후로 주일 학교 교사들과의 관계가 전보다 더욱 끈끈해졌습니다. 그동안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교리 교사들이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신앙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막아 버릴 뻔했다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제가 가진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심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례받은 지 오래되었고, 성당 내에서 많이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고, 또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면서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작은 이들의 소리를 경청하지 못하지는 않나요? 이럴 때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성찰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저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선택하고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기보다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며 주님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생명의 길’로 함께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일 복음: 마르 9,38-43.45.47-48.

Profile
인천교구 사제. 역사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시흥 은계성당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미움으로 살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 살아내기'라는 좌우명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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