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복음 묵상

성경 이야기

연중 제24주일 복음 묵상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9)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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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되고 나서 제일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미사 강론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 주님의 말씀을 나눈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례 미사 강론을 준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세상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그래서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하는 죽음에 대한 복음을 장례미사 중에 나눈다는 것은 거의 죽을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로 장례미사 강론을 준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딱딱하고 메마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갓 신부가 되어 보좌 신부 1년 차의 어느 날, 당시 저에게 좋은 모습으로 사제 생활을 보여 주신 주임 신부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신부님은 저에게 좋은 방법을 알려 주셨지요. 그 방법은 장례미사를 하기 전에 빈소를 찾아가 조문하고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분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함께했던 시간 중에 기억에 남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또 장례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보고 싶은 가족이 있다면 그때 해 주고, 시간이 괜찮다면 연도도 하고 오면 좋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임 신부님이 알려 주신 방법을 어설프게나마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상을 당한 가족들, 초면인 교우들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 위로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가족들도 고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했지요. 가족들은 주로 고인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고, 그분의 가치관이나 지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저를 의아하게 쳐다보곤 했습니다.

지금도 사제 생활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고, 이제는 장례미사 강론에 대한 부담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삶의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하느님의 자녀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미사 중에 봉헌하고, 그것을 함께 모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물음에 그저 어떠한 말로만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고백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해 그저 생각 속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살아 계시는지를 구체적인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날마다 증거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십자가의 삶이 그저 고통의 상징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이가 함께 참사랑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일 복음: 마르 8,27-35.

Profile
인천교구 사제. 역사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시흥 은계성당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미움으로 살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 살아내기'라는 좌우명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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