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라는 기적

영성과 신심

어쩌면, 이라는 기적

내 주위가 신에 대한 사랑으로 물들고 있는 것

2025.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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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다. 중학생 때부터 함께한 우리는 어느덧 인생의 많은 일들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친구로서 미안한 점도 있다. 글 쓰는 일이 워낙 고독을 요하는 일이라 내가 시간이 날 때까지 친구가 기다려 준다는 점이다. 언젠가 한강 선생님과 택시를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도 이 작품이 끝나야 친구를 만날 텐데, 하고 말씀하셨다. 소설가의 친구들은 대부분 기다리고 고독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친구는 개신교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가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친구는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관심이 많았다. 밥을 먹을 때 고요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쪽은 친구였지만 어느덧 반대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김없이 친구도 성당에 다녔으면 하는 욕심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서서히 성당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는 그대로 두기라는 일종의 룰을 배우고 있었다.

 

상대가 생각해 내기까지 그대로 두기, 상대가 직접 나서기까지 그대로 두기, 상대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그대로 두기.

 

견진성사 받을 때의 일이다. 간식으로 빵과 음료가 나왔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먹으며 성전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2주쯤 지나 작은 푯말로 성전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 순간 주변 신자들이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을까. 일단 먹기 시작한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까.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여지를 두는 것이 교회의 방식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기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몇 달 전 연이은 출간을 마치고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일어났던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해 서로 나누고 마지막쯤, 친구는 예비 신자 교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때의 놀라움과 기쁨. 하지만 나는 또 내가 너무 과하게 기뻐하면 부담을 가질까 봐 대단해!”라고만 말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개월에 달하는 수업을 받아야 한다. 본당 신부님께 미사(Missa)’는 라틴어 어원으로 보내다(Mittere)’에서 왔다는 걸 배운 적이 있다. 초기부터 그리스도교에서는 첫 번에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대신 여러 번 돌려보내 그의 마음을 알아봤다고 했다. 그리스도교가 정식으로 공표되기 전까지 신자들의 어려움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초여름 튀트키예에 방문했을 때 데린쿠유 지하 도시(Derinkuyu Underground City)를 찾은 적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건설한 지하 8층의 그 지하 도시에는 가축 우리와 장례식장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그 완벽함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박해가 시작되면 얼마나 오랫동안 숨어 지내야 할지 몰라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세례받으면 좋을 거야.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기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헤어질 즈음 친구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래?”

 

아직 친구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은 것 같았다. 긴 교리 시간을 결석 없이 다 채울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였다. 아이도 있으니까.

 

, 세상이 훨씬 덜 무서워져.”

 

거기에는 이런 마음도 담겨 있었다.

 

이 세상의 것들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져, 이 세상에 지나치게 함몰되고 싶지 않다고 느껴져,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이 들어. 신의 모상인 인간과 그 모상에 틈을 내어 자유를 새겨 넣은 우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돼. 하지만 사랑으로 세상을 주재하는 신의 존재를 알게 돼.

 

나 네 대모가 될 수도 있어.”

정말?”

 

친구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하지만 친구에서 엄마는 좀 그렇지 않니 했고 우리는 같이 하하하하 웃었다.

 

대모님을 정 찾을 수 없으면 그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거야. 본당에서 대모님을 만날 수 있으면 가장 좋지. 성당에 적응하기도 좋고.”

 

올 초 이사를 해야 했을 때 같은 동네를 고집한 건 성당 때문이기도 했다. 역에서 멀어지는 대신 성당에 가까운 쪽으로 이사 왔고 그 때문인지 동네가 더 동네다워졌다. 몇 해를 지나도 낯선 이 도시에서 이제 성당을 중심으로 이웃이 생겨나고 있었다.

 

얼마 전 친구와 나는 예비 신자 시절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세례명짓기를 함께 논의했다. 세례명은 보통 자기 생일이 있는 달의 성인명으로 짓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인터넷과 챗지피티를 이용해 이름 후보들을 좍 적어 보냈다. 나는 수많은 마리아 중의 마리아가 되었지만, 친구는 특별한 세례명을 가졌으면 싶었다.

 

너랑 얘기하니까 역시 고민이 풀린다.”

 

내가 여기저기서 찾아 복붙하는 무더기 세례명들을 지켜보다가 친구는 고마움을 표했지만, 그중에 정말 친구의 평생 성당 생활을 함께할 이름이 있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성당으로 향하게 만들었다니

 

요즘 작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동네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일이다. 작은 자리는 거리를 가깝게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는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해방촌의 한 서점에서 북토크가 끝나고 책에 사인을 하는데 한 독자가 내가 연재하고 있는 가톨릭 에세이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냉담을 풀었다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오른쪽 목덜미로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였다. 아직도 그 따뜻한 조명 아래 책과 함께 전해진 그 말의 풍경이 기억날 정도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냉담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요즘은 냉담자 대신 쉬는 교우라고 표현하지만 마음이 차가워졌든, 다른 일로 바빠졌든,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임시적 상태라는 믿음만은 같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성당으로 향하게 만들었다니.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대학에서 사목하시는 G신부님께 말했더니 하느님께 큰 상 받으시겠네요.” 하고 말씀하셨다.

 

, 냉담자를 회귀시키면 큰 상을 받는구나.

 

가톨릭 상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물론 이때의 상은 이미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하느님의 사랑의 형태일 테지만 비로소 나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새 신자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마련한 오롯한 신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 말을 해 준 독자에게 고마웠다.

 

친구는 올해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는다. 나는 벌써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어떤 꽃다발을 들고 갈지, 어떤 선물을 할지 생각하면서. 내 주위가 신에 대한 사랑으로 물들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 나에게 선물 같은 일이다. 아주 작고 왜소한 인간으로 내디딘 이 세상에 과분한 빛이 비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결심 덕분이라는 것이 기적같다.

 
Profile
2009년 <한국일보>로 등단해 《너무 한낮의 연애》(2016), 《경애의 마음》(2018), 《대온실 수리 보고서》(2024) 등의 소설과 《식물적 낙관》 등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분투 중이며, 밤마다 가톨릭 책을 읽다가 잠에 들어 가족들에게 ‘재야 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60여 종의 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식집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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