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작품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십자가이다. 제단 위의 십자가 작품을 통해 앙리 마티스는 미사나 전례 때마다 우리에게 믿음과 신앙에 대한 깨우침을 일깨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단순한 모양을 통해 신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앙리 마티스, 1951, 브론즈, 105×21cm, 방스의 도미니코회에서 기증(1973), 바티칸 박물관, 로마, 이탈리아
희년을 맞아 방문한 바티칸
2025년은 “예술가와 문화계의 희년(Giubileo degli Artisti e del Mondo della Cultura)”이다. 2024년 12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전 성문 개방과 함께 공식적으로 시작된 2025년 희년은 교회 역사상 27번째 보편 희년이자, 2015년 특별 경축에 이어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기념한 두 번째 희년이다.
이번 희년은 풍성한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행사로 계획되었다.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축하 행사와 의식 외에도, 올해는 특정 직업이나 가정, 교회 및 사회 내에서의 역할에서 문화, 예술의 범주에 속한 이들을 위한 성년이다. 특별히 바티칸은 지난 2월 15일부터 18일까지를 교황청 문화교육부 주재로 교회와 예술가와 문화계의 운영자에게 헌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종 심포지엄과 희년 맞이 문화예술계에 참여하는 이들을 성베드로 성당으로 초대하여 희년 미사에 초대하고, 성문을 함께 통과하고 다양한 전시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교황님의 환우에 몇몇 행사는 취소되었다. 교황님은 마지막 미사를 대신 집전한 교황청 문화교육부 장관 호세 멘돈사 추기경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예술인들은 고통 속에 있는 세계에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진리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술가들과 문화계 종사자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본질적 사명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대변하며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세계를 구원하는 아름다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포된다.”라고 강조하셨다.
필자는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담당 사제로 다양한 희년 행사들과 미사에 참여하였지만, 무엇보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잊을 수 없다.
바티칸 박물관 내 마티스의 방
사실 유학 시절, 박물관에서 하루 종일 관장님께 직접 수업을 들을 기회도 있었다. 수십 번 박물관을 관람했고 아무도 없을 때나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가 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런데 박물관 안의 정말 많은 전시품 중에 나를 사로잡는 단 두 점의 작품이 있다. 하나는 고흐의 <피에타>라는 조그만 회화 작품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앙리 마티스의 1951년 작품인 <십자가(Crucifix)>다.
많은 사람이 마티스를 화가로 아는데, 그는 시각 예술가로 판화 제작자 혹은 조각가이기도 하다. 마티스는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초중반 시각예술에 혁명적 발전을 이루었고 회화와 조각에서도 중요한 작품을 선보였다. 마티스는 피카소보다 11살이 많지만, 그들은 친구이자 최고의 경쟁자이자 서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인정할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방스의 로사리오 경당의 제단
이 작품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마티스가 꾸민 ‘방스의 로사리오(묵주) 경당(Chapelle du Rosaire de Vence)’ 안 작품을 모아 재구성한 ‘마티스의 방’ 안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티스 작품인지도 모르고 지나가거나, 별 관심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바로 시스티나 경당 입구 바로 전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빨리 경당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뿐일 것이다.
심지어 관람객들은 마티스를 화가로 알고, 그 방 안의 작품들은 커다란 사이즈로 벽을 수놓고 있다. 이에 경당으로 향하는 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이 작품은 관객들의 무관심 속에 묻히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앙리 마티스가 누구냐면……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야수파를 대표하는 앙리 마티스는 원래 법률가였다. 그런데 20대의 늦은 나이에 미술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당시 과감한 색채를 활용한 후기 인상주의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빛을 더 세밀하게 연구하고, 환상적인 점묘법을 구현하며 강렬한 표현과 색을 점묘법으로 그린 <사치, 고요, 쾌락>과 함께 자신의 아내 아멜리를 그린 역작 <모자를 쓴 여인>은 마티스의 대표적인 야수파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자연의 색은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채색을 했다는 점에서 색채를 해방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마치 야수의 형상을 그렸다는 비판을 받으며 야수파(Fauvism)가 탄생했다.
1941년, 복부암 진단을 받은 마티스는 수술을 받아 휠체어에 의존하고 종종 침대에 묶여 있기도 하였다. 이에 회화와 조각은 더 이상 육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종이와 가위를 사용하여 새로운 예술 형식(종이 콜라주 또는 데쿠파주)을 개발하게 되었다.
초반기 그의 회화가 평평한 모양과 통제된 선이 특징이었다면, 1930년대 후반에는 무대 세트나 의상 작업 등을 했다. 수술 후에야 페이퍼 컷 아웃(종이 오리기) 기술을 이전의 실용주의적 기원이 아닌 독자적인 형태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마티스는 수술 후 자신을 간호해 줄 사람을 찾는데, 이때 생애 후반기의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자크 마리(Jacques-Marie)라는 간호 학생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미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림을 가르치며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되었다. 그녀가 1944년 수녀원에 입회하기 위해 자리를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후 자크 마리는 1946년에 도미니코회 수녀가 되었다.
방스의 로사리오 경당 내부
1951년, 마티스는 ‘마티스 경당(Matisse Chapel)’이라고 불리는 방스의 로사리오(묵주) 경당의 인테리어, 스테인드글라스 및 장식을 디자인하는 4년간의 프로젝트를 마쳤다. 마티스는 경당뿐 아니라 십자가, 제의 등 전례 용품들도 다양하게 제작하였다. 이는 무신론자였던 마티스와 수녀였던 자크 마리의 긴밀한 우정의 결과였다.
이는 현대 미술, 심지어 비그리스도교 미술과 전례 미술의 발전과 개혁을 위한 10여 년 뒤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정신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마티스가 빚은 십자가의 의미
오늘 함께 살펴보는 이 작품은 1973년 방스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바티칸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제단에 놓이는 십자가’라고 되어 있다. 높이가 105cm로 제단 위에 설치하고,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나 신자들의 묵상과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설치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전체 모양은 위로 길게 뻗은 ㄴ자 모양의 흰색 금속 판넬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 장이 아니고 마치 두 장을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래 바닥부터 맨 위쪽까지 길게 틈이 있다. 아래쪽 바닥 부분의 틈새로 푸른색 작은 금속판이 끼워져 서 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서 있다. 그리고 강한 빛이 그 십자가를 비추고 있다.
여기서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흰색 판넬이 처음부터 끝까지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이것은 인간의 창조부터 구원까지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 안에는 “나의 구원의 역사”도 포함된다.
갈라짐을 통해 빛이자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태초부터 구원의 역사가 끝나는 시점까지를 표현한다. 그래서 빛이 비치는 시작부터 끝까지 판넬은 갈라져 있으며, 하느님 외에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기에 판넬의 마지막 부분도 열려 있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인간 역사 안에 점 하나로 표현될 수 없다. 십자가를 받치고 있는 푸른색 작은 판넬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고,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았던 시기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인류 역사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나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나의 삶은 과거일 수도, 지금일 수도,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희망’, ‘영광’ 등을 상징하는 푸른색 판넬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는 주님과 나만이 알 수 있는 때이다.
그렇다면 ‘빛’과 푸른색 판넬 위 ‘금속 십자가’와 ‘십자가 그림자’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빛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이시자, 인간 혹은 나의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또한 금속 십자가는 그 안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또한 나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를 통한 희생과 사랑에 대한 진실된 체험, 믿음, 희생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를 금속과 같이 단단하고 또렷한 마음으로 믿고 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진실된 십자가가 아니라 저 뒤, 그림자처럼 흐릿해진 믿음으로 나를 위장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