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지내며

가톨릭 예술

사순 시기를 지내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미네르바의 그리스도>

2025.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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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단지 그 죄의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은총과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 덕분에 우리의 죄는 가벼워진다.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절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부활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 소개할 작품이 이에 대해 답을 해 준다.

 

미네르바의 그리스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가 중 한 명은 바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ti)’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미켈란젤로를 화가로 알고 있다. 아마도 시스티나 경당때문일 것이다. 로마에서 공부하며 시스티나 경당을 수십 번 다녀봤는데, 이곳은 정말 대작이자 명작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피에타>와 오늘 소개할 <미네르바의 그리스도>이다.

 

미네르바의 그리스도(미네르바의 구원자 그리스)

미켈란젤로(1519~1521), 대리석, 205cm,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로마, 이탈리아

 

<미네르바의 그리스도>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Basilica Santa Maria sopra Minerva) 주 제대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때때로 <십자가를 든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관심을 갖지만, 상대적으로 이 작품은 인기(?)가 없다.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 작품을 소유한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은 판테온 바로 근처에 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 판테이온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경배하는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신전이지만, 7세기부터 순교자들의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다. 이처럼 이탈리아에는 고대 로마 신전 등을 개축하여 성당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Basilica Santa Maria sopra Minerva)미네르바 위에 계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는 의미로 고대 미네르바 신전으로 추정되는 고대 유적지 위에 지어졌다. 로마에서 유일한 고딕 양식의 교회이며, 또한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을 받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외관은 수수하지만, 내부는 붉은색과 푸른색, 도금한 별들로 수놓은 아치형 천장과 많은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십자가를 든 그리스도〉, 필리포 리피의 〈수태고지〉, 〈성모승천〉이 있다. 이 성당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상징물로는 성당 앞에 오벨리스크를 지고 있는 코끼리가 있다. 코끼리가 지성과 교양을 상징하며, 미네르바도 지혜의 여신으로 널리 알려졌기에 조각가 베르니니가 생각해 낸 것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제대 왼쪽 기둥 앞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외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예수 그리스도

 <미네르바의 그리스도>15146월 로마 귀족 메텔로 바리(Metello Vari)가 의뢰한 작품이다. 그는 나체로 서 있는 인물이 팔에 십자가를 안고 있는 모습을 원했지만, 구성은 전적으로 미켈란젤로에게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1515년경 마첼로 데이 코르비(Macello dei Corvi)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이 동상을 작업하고 있었지만, 흰 대리석에서 예수님의 왼쪽 뺨 부분에서 검은 물줄기와 같은 검은 줄무늬를 발견하고 중간에 포기했다.

 

 Giustiniani Christ(출처: Gualtiero Corsi S.r.l.)

 

첫 번째 버전을 포기한 미켈란젤로는 1518년에 두 번째 동상인 〈미네르바의 그리스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의 그리스도 동상은 엄숙하고 차분한 자세로 몸을 세우고 십자가에 기대고 있는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그의 고요한 얼굴과 복잡한 해부학적 디테일한 표현은 작품에 특별한 생명력과 영성을 부여한다. 작가는 부활하신 후의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각진 형태의 십자가는 정면을 향해 곧게 서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기대어 몸 전체가 정면을 향해 있고, 예수님의 얼굴은 왼쪽 제대 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 다리는 쭉 뻗고 오른쪽 다리는 앞으로 내밀어 무릎을 구부리고 몸을 비틀고 있다. 이는 가장 아름다운 포즈라고 일컬어지는 비너스 상의 동작인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역동적인 자세는 조각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더욱 다양한 인상을 주어 그를 둘러싼 공간을 역동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암시하도록한다.

 

작가는 젊은 모습과 강한 육체적 모습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그리스도는 나체인데, 비율이 완벽하게 잡혀 있고 해부학적으로 정확하다. 가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조각되었고, 근육 역시 뚜렷하다. 작은 것도 세심하게 관찰하여 조각한 이 남성 형태의 완벽한 재구성은 미켈란젤로를 당대의 다른 예술가들과 차별화한다.

원작과 달리, 현재 금박을 입힌 청동 휘장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원작에는 미켈란젤로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몸에 상처나 못 구멍이 없었다. 또한 독실한 신자들이 예수님의 오른발에 자주 키스했기 때문에 조각상이 마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른쪽 발에 신발을 추가하기도 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계신다. 십자가는 〈미네르바의 그리스도〉에서 유일하게 직선으로 묘사되어 더욱 단단한 모습으로, 깨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고통과 죽음의 도구인 십자가와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과 갈대를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십자가는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 십자가는 사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지고 가야 할 고통이자 동시에 신앙과 은총의 힘의 원천이다. 죽음이 인간의 끝이자 마지막이 아닌 시작이자 하느님 사랑의 결실임을 알려 준다. 즉 고난이 성령의 은총의 도구이자,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었음을 이 예술 작품은 정확히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라 우리의 구원도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분께서 이렇듯 끊임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완벽하고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모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려 낸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통해 사랑을 보여 주신 온전한 하느님의 아드님의 부활이 이러한 모습이라면, 과연 죄라는 울타리 속에 있는 우리의 부활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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