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원죄와 나

가톨릭 예술

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원죄와 나

클림트의 〈아담과 하와〉

2025.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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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 3,6-13)

 

아담과 하와(1916~1918)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캔버스에 유채, 173×60, 오스트리안 벨베데레 갤러리, , 오스트리아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아담과 하와(Adam and Eve)(1917)는 초반기 작품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와 유딧〉(1901)과 함께 성경의 주제와 시대를 초월한 여성성의 본질에 대해 매혹적으로 탐구한다. 성경의 내용을 담은 클림트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혹자는 작가가 일부러 미완성으로 남겼다는 이야기도 한다.

클림트의 작품상징주의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 단순해 보이는 이 그림에서도 다양한 상징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완성으로 남긴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에 대해 다른 어느 것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오른손 부분이다. 아마 작가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쥐고 있거나, 두 사람이 하나에서 시작되었음을 드러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성경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담과 하와라는 주제를 다룬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주로 아담이 잠든 사이 그의 갈비뼈에서 하와가 탄생하는 장면이나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거나 이 죄로 인해 천상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주를 이뤘다. 어쩌면 클림트는 이러한 뻔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그림들의 공통점은 주체가 남자라는 것이다. 하와는 죄의 원흉이자 부수적인 존재로 아담이 언제나 지배적 존재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아담과 하와 모두 정면을 바라보지만, 화면에서 더 많은 존재감과 지배력은 하와가 가지고 있고, 아담은 그녀의 그림자나 배경처럼 보인다. 작품에서 남자는 수동적이고 잠들어 있지만, 여자는 활동적이고 깨어 있는 상태다. 전통적으로 밤은 여성의 힘, (태양)은 남성의 힘이 지배하는 시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남성은 밤을 연상하는 것처럼 힘을 잃어 어둡게 보이고, 여성이 밝은 빛을 발산한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클림트의 초대

 클림트는 이전의 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없애고 더 넓고 독창적인 비전을 포용한다. 클림트는 이 그림을 통해 생명의 어머니로서의 하와를 창조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왜곡되어 울퉁불퉁한 인체 묘사는 관능적이기보다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넓은 엉덩이와 짧은 하체의 전신 여성 인물을 그린 표현은 선사 시대의 유물을 연상시킨다. 생명의 어머니로서 하와의 존재가 성경뿐 아니라 선사 시대부터 존재해 온, 유물과 함께 자신의 그림으로 증명되는 순간이다. 동시에 하와의 발은 화려하고 생생한 아네모네꽃으로 덮여 있다. 아네모네는 다산과 영원한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꽃 요소를 통합함으로써 클림트는 하와가 생명 연속성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강화하고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녀의 뒤 아담을 감싸는, 표범 가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의 거칠고 황홀한 여성 추종자인 마이나드와 연결된다. 그것은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에로틱한 사랑을 상징한다.

 

인간의 모든 관능적인 형태를 묘사하려는 클림트의 헌신은 하와의 몸에 대한 묘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세심한 노력으로 섬세한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인 부드러운 피부톤을 사용하여 다채로운 몸매를 만든다. 이 구성은 하와의 몸의 광채를 높여 그림의 초점이 된다. 생생한 색조는 하와를 아담과 구별시키며, 아담의 구릿빛 단단한 체격은 하와를 보호하는 바탕 역할을 한다. 대비되는 색상과 위치는 남성과 여성의 에너지 사이의 영원함을 상징하며 고유한 조화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클림트는 시대를 초월한 하와의 역할을 강조하며, 관객이 삶의 본질, 어머니, 인간 욕망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도록 초대한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며

이 작품을 살펴보며,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그들이 지은 죄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의 역할은 먼저, 죽음의 고통과 같은 유배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자신들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아담과 하와를 통한 죄의 성찰을 비롯하여 이 시대를 사는 나의 삶으로의 확장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듯 단순히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그 죄의 대가로 우리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는 없을 것이다. 선악과를 통해 자신이 알몸인 것을 알아 두려워 숨었다는 의미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알몸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음으로써 그 순수함이 파괴되고 인간의 죄의식이 드러나게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 순수함을 잃고 죄로 물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알몸을 두려운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심지어 죄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밀어 회피하려 한다. 이는 비단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부가 왜 하필이면 이런 그림을 선택했을까?”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나체 여인의 모습을 보며 외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클림트의 이 작품을 보며 미사 때마다 제 탓이오!”라고 죄를 고백하면서 다른 이를 탓하기보다 나 자신의 순수함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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