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초대, 내 삶의 변화를 위한 부르심

가톨릭 예술

성령의 초대, 내 삶의 변화를 위한 부르심

두봉 주교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나보내며

2025.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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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 한국 교회와 우리는 두 분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안동 교구장이셨던 두봉 주교님과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님 곁으로 가셨다. 정말로 존경하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던 두 분과의 이별은 교회뿐 아니라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먼저 두봉 주교님과는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었기에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제가 되기 바로 전에, 주교님께 피정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같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사제가 되고 평생 사제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주교님께서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셨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고통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나는 잔뜩 긴장하고 신학교에서 배웠던 온갖 지식을 총동원하여 기억나는 대로 읊어 댔다. 주교님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셔서 그래요. 우리 대신, 자녀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것,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이셨을 거예요. 사랑하면 모든 것이 그냥 기쁘잖아요. 부제님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니 그저 기쁜 마음으로 사제로 삼고 싶으신 거예요. 그저 예수님을 기쁘게 사랑하세요. 그러면 사제로 사는 것이 행복하고 기쁘실 거예요. 언제나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세요.”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고민한 것 자체가 부끄러웠고, 이후 주교님 말씀을 사제 생활의 모토로 삼았다.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주교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사셨고 끝까지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주교님을 보내드린 지 10여 일 후, 갑자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건강이 악화되셨지만, 최근 호전되어 부활 대축일 미사에도 나오셨는데 충격이었다예전에 로마에서 유학 중일 때,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가 열렸고,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선출 결과를 직접 듣고 볼 수 있었다. 교황명이 프란치스코라는 발표와 함께 교황님이 나오시며, 첫 강복을 주실 때 온 군중과 함께 환호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어제 일 같다.

 

교황님께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신 것처럼 어떤 삶을 추구하셨고 사실지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많았다. 기대처럼 그분은 가톨릭 교회 최초 남미 출신 교황으로 금이 아닌 쇠를 선택하고, 힘들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는 어느 곳이든 가셨고, 목소리를 높이셨고, 무릎을 꿇으셨다. 그래서인지 평생 교회를 위해 힘들게 삶을 사신 교황님께서 이번 부활절을 마지막 선물로 받으셨는지 모르겠다.

 

교황님은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셨지만,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한 어렵고 힘든 길을 걸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언제나 그분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의 미소가 남아 있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두 분은 평생을 검소하고 겸손하시며, 어렵고 힘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시면서도 항상 아기 같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그 미소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고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마치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과 닮아 있었다.

 

68일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으나, 우리의 곁을 지켜주시려 성령으로 내려오신 신비의 은총을 기억한다. 성령의 형상으로 내려오시어 다시 우리와 함께하심은 또 다른 주님 사랑의 모습이자 기쁨이다.

 

성령 강림(Pentecost)

엘 그레코, 1596~1600년경, 캔버스에 유화, 275×127cm, 프라도 국립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그리스 출신의 화가 엘 그레코

오늘 교황님과 주교님을 떠나보내며 떠오른 그림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성령 강림>이다. 그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로 현재의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고 스페인에서 활동한 르네상스의 화가, 조각가 및 건축가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엘 그레코는 일종의 별명으로 그리스 사람, 그리스 출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본명을 그리스 문자로 자신의 그림에 서명했으며, 고대 그리스어로 크레타섬을 의미하는 Κρηζ라는 단어를 추가하기도 했다. 그는 베네치아로 가기 전 26세까지 비잔틴 회화 훈련을 받았고, 이후 베네치아로 넘어가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매너리즘과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요소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개척해 갔다.

 

그는 특히 틴토레토(Tintoretto)와 티치아노(Tiziano)와 같은 당시 베네치아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들 두 대가의 영향으로 자연적인 형태나 색채가 과감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로마에서의 정해진 법칙과 같은 원근법이나 해부학, 사실에 충실한 묘사와 같은 정해진 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넘어서고자 했다. 1577년에는 스페인의 톨레도로 이사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며 일했다.

 

엘 그레코의 극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스타일은 동시대인들에게는 당혹스러움을 안겨 줬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다. 표현주의와 입체파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그의 성격과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와 같은 시인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현대 학자들이 전통적인 범주에 포함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예술가로 여겨진다. 그는 영혼의 모습을 표현하듯 구불구불하고 길쭉한 인물 모습과 환상적인 표현이나 색채 구성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한 비잔틴 전통과 서양 회화의 전통을 결합하였다.

 

이슬람 세력과의 오랜 싸움 끝에 통일을 이룬 스페인에서는 가톨릭 신앙의 신비적 요소들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스페인 사람들의 관심은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종교적 열정과 경외심, 그리스도의 고통, 최후의 심판 등에 쏠려 있었다. 더욱이 당시 스페인은 종교 개혁에 맞선 가톨릭 개혁 운동의 선두 국가로서 종교적 신비주의의 경향이 짙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톨릭 개혁 운동과 스페인 신비주의 안에서 그는 특히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인체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종교적 열정으로 신비스럽고 감동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중요했다.

 

 

성령 강림으로의 초대

그는 신약 성경 속 내용을 주제로 많은 성화를 그렸는데, 그중에서 오늘 성령 강림은 사도행전을 그 배경으로 한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14)

 

이 성화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 신학교 성당의 일곱 개의 제단화 중 하나로 상단의 십자가형 그림 바로 오른쪽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화는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국립 미술관에 있다.

 

성화는 좁고 어두운 공간을 배경으로, 위에서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빛을 내뿜고, 불꽃 모양의 빛이 사람들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다. 성모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모습으로 성령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어떤 이들은 손을 들고 있거나 손을 벌리고 있기도 한다. 몇몇은 성령의 빛이 너무 눈부셔 태양을 보듯 손을 들어 그늘막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손을 벌려 성령을 받아들이는 모양새이다.

 

이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화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손을 통해 옆 사람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옆 사람과 손이 떨어져 있는 인물은 없다. 비록 한 손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손은 분명 뒤로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두 손을 마주 모아 기도하는 손을 하고 계시는 성모님으로 일치를 이루게 된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시자 주님의 어머니로,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하신다. 화가는 우리의 시선과 색상을 통해 성모님께 집중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등장인물이 총 열다섯 명으로 성모님과 두 명의 여인 그리고 열두 명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화 안에서 성모님의 왼쪽에 있는 여인은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성령을 바라보는 여인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다른 마리아로 추정된다.

 

작품에서 성모님을 바라보는 인물은 총 세 명으로,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와 그 옆의 녹색 옷의 요한 사도 그리고 반대편 노란색 옷을 입은 베드로 사도이다. 화가는 대담한 색상을 중요 인물들에게 사용하고 있다.

 

성모님은 천상을 상징하는 푸른색과 열정혹은 고통을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으시고 다른 이들보다 크게 그리고 중앙에 자리하도록 그렸다. 베드로 사도에게는 회개를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혔다. 과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를 떠올리게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요한 사도는 생명을 의미하는 녹색 옷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작가는 다양한 색을 통해 각 인물에게 그 역할이나 상징성을 부여해 그 의미를 상기시키고 강조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색일까?

 

엘 그레코는 이 그림의 좁은 공간 속 등장인물의 자세나 위치를 통해 그림에 역동성과 신비적 요소를 배가시켰다. 열다섯 명의 인물 중 열 명을 최상단부에, 세 명을 하단부에 그렸고 최하단부에는 단 두 명만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 두 명의 몸과 다리를 길게 늘이는 방식으로 크게 그리고 가능한 한 몸을 뒤로 젖히는 동시에 팔을 넓게 벌려 전체 그림을 떠받치도록 했다. 이러한 모양새를 통해 그림은 역삼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안정된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엘 그레코는 다른 많은 화가처럼 자신을 그림에 그려 넣었는데, 요한 사도 옆에 얼굴만 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다. 어쩌면 이 화가도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그 자리에 함께하고픈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그 자체로 신비이다. 그리고 그 신비 안에 화가는 자신의 모습처럼 우리도 함께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성령 강림으로의 초대는 내 삶의 변화를 위한 부르심이다. 이는 비단 사제나 수도자와 같은 이들만의 부르심뿐만이 아니다. 두봉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동시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과 삶에서처럼 고통을 겪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는 중립적인 태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지금 바로 이러한 삶의 변화로 나를 초대하고 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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