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삶과 신앙

영성과 신심

신앙과 삶, 삶과 신앙

반드시 일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2025. 08. 19
읽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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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정이야기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하느님께서는 친히 한 아이를 빚으시어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 생명을 얻은 아이는 세상 속 서씨 가문의 첫째 딸로 태어나 희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희정은 하느님의 보호 아래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하루는 지하철을 타러 가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환승역이라 그랬는지 화장실에는 사람이 많았고 서희정은 줄의 맨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차례가 된 서희정! 그때 한 어르신이 씩씩하게 들어오시더니 새치기를 시도했다. 너무나 당당한 그 모습에 멈칫하던 서희정은 생각했다. ‘뭐야? 장난해?’ 서희정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기요! 지금 줄 서 있는 건데욧!”

 

그저 단호하게 말하려던 것뿐이었는데, 앙칼진 목소리에 짜증과 경멸까지 한 스푼씩 보태어져 무섭게 튀어나왔다. 주변의 모든 사람은 서희정과 어르신을 쳐다봤고 어르신은 민망한 표정으로 서희정 뒤로 물러나셨다. 서희정 뒤에는 어르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마리아이야기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하느님께서는 친히 한 아이를 빚으시어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다. 생명을 얻은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열 살 무렵, 세례를 받았다. 아이의 세례명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무럭무럭 자라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하루는 고해성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을 찾았다. 판공성사 날이라 그랬는지 고해소 앞에는 사람이 많았다. 마리아는 줄의 맨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차례가 된 마리아! 그때 한 어르신이 씩씩하게 들어오시더니 새치기를 시도했다. 너무나 당당한 그 모습에 멈칫하던 마리아는 생각했다. ‘어차피 내 뒤에 아무도 없잖아. 어르신보다 튼튼한 내가 조금 더 서 있는 게 낫지.’ , 마리아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 줄 선 거긴 한데 먼저 들어가세요.” 어르신은 고맙다고 말하고는 고해소 안으로 들어가셨다.

 


 

서희정 & 마리아이야기

 

어르신께 고해 순서를 양보하고 조용히 성찰하던 마리아는 순간 서늘함을 느꼈다. 자신이 지킬 & 하이드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곧 서희정이고, ‘서희정은 곧 마리아였다. 하지만 서희정마리아는 마치 다른 인격체인 양 말하고 행동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한 인간이 헨리 지킬이라는 선()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악()으로 분열되는 이야기다. 소설 끝에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 대해 헨리 지킬이 진술하는 사건의 전모가 나온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만약 이 상태가 더 지속된다면 본성의 균형이 깨져 자발적인 변화의 힘을 상실할 것이고 결국 에드워드 하이드의 성격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성격으로 굳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나는 간파하기 시작했다.”(《지킬 박사와 하이드》, 더 클래식, 124)

 

그렇다. 서희정 마리아는 지킬의 진술을 통해, 자신 역시 서희정과 마리아의 균형이 깨져 버리면 어느 한쪽으로 굳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간파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지킬과 하이드는 지킬은 낮에, 하이드는 밤에 나타난다는 시간과 빛의 경계가 있었고, ‘서희정과 마리아는 세상과 성당이라는 장소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서희정과 마리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24시간 중 성당보다 세상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기에 서희정의 존재가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서희정 쪽으로 기우는 자신을 인식했다. 그녀는 마리아의 존재를 더 키우기로 결심했다. 성당에서 갖가지 활동을 하며 성당에 있는 시간을 늘린 것이다. 늘리고 늘린 후에는 성당 밖까지 성당 일을 들고나와 마리아 쪽에 무게를 더 실어 주었다. 그 노력 덕분에 서희정은 마리아에게 짓눌리고 있었다. 이제 정말 서희정은 사라지고 마리아만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던 어느 날, 마리아의 성당 사람들과 서희정의 가족이 우연히 마주쳤다. 그날 성당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희정이 봉사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몰라요.”

 

그 순간 마리아는 서희정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성당에 있는 시간이 확연히 많았다. 성당 사람들과는 온종일 붙어 있고, 가족은 얼굴도 못 보는 날이 많았다. 성당에서 봉사하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어도 가족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서희정이 있는 한, 마리아는 온전히 마리아일 수 없었다. 그뿐인가? 서희정은 여전히 직장에서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이들에게 어떻게 상처 주는 말을 해 줄까,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있었다. 길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보면 즉시 고개를 돌려 버렸고 뉴스에 나오는 소외된 이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지킬이 하이드를 죽였다고 생각한 순간 하이드가 더 강력하게 나타났던 것처럼, 서희정도 죽지 않았던 것이다.

 


 

의 이야기

 

서희정과 마리아 사이에 필요한 건 애초에 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둘은 일치되어야 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삶, 서희정도 마리아도 아닌 제3의 삶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어느 한쪽을 없애서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다. 서희정이 마리아여야 하고, 마리아가 서희정이어야 했다.

 

프리랜서인 나는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의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스스로 조정해야 한다. 매일매일 같은 날이 없고 늘 변화무쌍하다. 마감이 있으면 50시간을 깨어 있기도 하고, 모처럼 휴식이 가능한 날엔 20시간을 자기도 한다. 남들이 쉴 때 일을 하고, 남들이 일할 때 휴일을 즐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꼭 지키려 하는 게 있다. 하루를 시작할 때는 아침 기도와 그날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루를 마감할 때는 저녁 기도와 성경 통독을 하고 묵상하는 것. 주일에는 당연하지만 무조건 미사를 드린다. 지방에 있어 저 멀리 성소로 찾아가야 해도 어떻게든 찾아가 미사를 드리고, 해외에 있어 말이 달라도 무조건 근처 성당과 미사 시간을 알아내 미사를 드린다.

 

틈틈이 성서모임, 꾸르실료, 청소년 쉼터 아지트 봉사를 하고 울뜨레야, 방송작가 기도 모임, 포콜라레 생활 말씀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으므로 나는 노력한다. 무엇보다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 가게에서 만나는 사람,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사람 등, 서희정이 삶에서 만나는 사람을 마리아가 신앙 안에서 만나는 사람과 똑같이 대하고 관심 가지려 노력한다.

 

커피를 사 마실 때도, 음식을 포장할 때도,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가져가 마리아가 공동의 집을 생각하듯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누군가의 고통에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함께 아파하려 한다. 마리아가 성당 사람에게 말하듯 가족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주 연락하려 한다. 직장 동료에게도 마리아가 성당 사람에게 하듯 많이 웃고 이해하고 도와주려 한다. 모든 것이 서희정과 마리아의 일치를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일치가 된 듯하면서도 분리되는 서희정과 마리아를 수없이 마주한다. 아무래도 이 둘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하느님 아빠에게 돌아가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혼자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 주님과 함께라면 반드시 일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그러므로 오늘도 서희정 마리아는 신앙을 산다.

 

 

 

Profile
방송, 공연,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수필 등 다양한 콘텐츠에 필요한 글을 다루며 살아갑니다. 현재 가톨릭방송작가모임의 대표로 활동하며, cpbcFM <행복을 여는 아침> 작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로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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