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형을 위한 디지털 쉼표

영성과 신심

삶의 균형을 위한 디지털 쉼표

정보 과잉 시대에서 침묵과 고요를 찾다

2025.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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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스크롤하는 세계

 

하루는 하나의 질문이다.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하는가?” 많은 이들이 짧은 죽음과도 같은 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기도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손가락은 화면 위를 미끄러지고, 두 눈은 날씨, 메시지, 뉴스, SNS 피드로 향한다. 이 일상적인 스크롤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하루의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를 말해 주는 신호이자, 내 감각이 어떤 구조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

 

콘텐츠는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메시지만을 담고 있지 않다. 요즘의 콘텐츠는 플랫폼, 디바이스,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조건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실행 단위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콘텐츠는 스스로 완성된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느냐에 따라 의미가 변화한다. 그 때문에 콘텐츠는 그 자체로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감각은 더 이상 단지 인간의 몸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감각은 디지털 기기와 사람이 맞닿는 인터페이스 위에 놓여 있으며, 그곳에서 인간은 시각, 청각, 촉각, 운동 감각까지 동원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라디오가 청각을, 텔레비전이 시청각을, 컴퓨터는 손을 감각의 축으로 삼았다면, 스마트폰은 이동성과 위치 정보까지 감각의 일부로 흡수했다. 이제 감각은 사람이 걸어 다니고 움직이는 일상 속 동선을 통해 입력되고, 연산을 통해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감각의 본질을 재정의한다. 감각은 반응이 아니라 입력이 되고, 내면은 데이터가 된다. 화면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손가락, 머무는 시선, 느껴지는 진동은 모두 수치화되어 기록된다. 감각은 해석 이전에 연산된다. 인간은 점차 감각의 주체에서 감각의 객체, 다시 말해 데이터의 원천으로 전환된다.

 


 

수치화된 감각과 인간성의 균열

 

이제 스크롤은 단지 정보를 넘기는 행위가 아니다. 내 감각이 어떤 과정으로 설계되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 스크롤을 하는 손가락의 방향은 곧 시선의 방향이 되고, 시선은 다시 내 마음의 방향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스크롤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자연스러움이 문제다.

 

수치화된 감각은 인간 감각의 해석 가능성을 빼앗는 일이 된다. 우리는 콘텐츠를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대신, 단지 머문 시간’, ‘반응 속도’, ‘터치 횟수같은 데이터로 번역된다. 인간의 정서적 반응은 좋아요’, ‘댓글’, ‘공유같은 지표로 환산되고, 감각의 깊이는 플랫폼의 연산 속에서 지워진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해석이다. 감각은 본래 해석이 필요하다. 의미를 찾고, 관계를 세우며, 세계와 응답을 주고받는 통로다. 그러나 숫자로 표시되는 감각은 더 이상 느낀다거나 이해한다고 표현하기 힘들다. 오직 처리하고, 분류하고, 예측할 뿐이다. 이때 감각은 타자와의 만남이 아니라, 효율과 최적화를 위한 기호에 불과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계에 응답하기보다는, 스크롤의 속도에 따라 반응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이는 감각의 자동화이자 인간성의 균열이다. 반응은 빠르지만, 성찰은 느려지고, 감정은 짧아지고, 관계는 얕아진다. 감각이 주는 정서적 깊이와 응답의 밀도가 줄어들 때, 인간은 점점 더 존재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관상적 감각 훈련: 존재의 시선을 되찾기

 

이러한 시대적 전환 속에서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고요한 응시이다. 감각의 흐름을 멈추고, 그 흐름 자체를 바라보는 훈련. 관상은 바로 그렇게 감각을 재구성하는 행위다. 종교적 수행이기 이전에, 관상은 내 감각이 향하는 방향을 조율하고, 다시 정렬하는 행위다.

 

순간 인지는 지금 나의 감각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영상을 클릭하기 전의 정적, 화면을 넘기기 전의 손가락 긴장, 특정한 장면에서 눈이 멈추는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의 미세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자동 반응을 중단하고, 감각에 대한 주도권을 다시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메타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메타인지는 감각-맥락-응답의 관계를 조망하는 능력이다. 어떤 콘텐츠가 나의 감정을 흔들고, 어떤 자극이 내 시선을 붙잡는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이때 감각은 기술이 설계한 반응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의미를 지닌 나의 응답 구조가 된다. , 메타인지는 단순한 수용을 넘어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존재를 훈련하는 시선이 된다.

 

디지털 시대의 감각 구조는 인간을 반응하는 존재로 만들어 간다. 여기에서 순간 인지와 메타인지는 그 구조를 자각하고 넘어서는 내면의 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감각을 다시 수련의 장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관상은 신앙의 실천을 넘어 감각 구조의 깊이를 회복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고요를 반복하며 감각을 조율하고, 존재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스크롤은 손가락의 운동이지만, 관상은 존재의 운동이다. 하나는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응답이다. 우리는 지금, 이 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감각의 자동화를 멈추고, 다시 고요히 응시할 수 있을 때, 신앙과 삶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Profile
가톨릭 신앙을 기반으로 디지털 시대의 인간성과 감각 구조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과 하느님, 인간과 세계, 그리고 내면의 다양한 층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자신을 '연결주의자'라 여깁니다. AI와 알고리즘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새로운 감각 구조와 응답 방식은 필연적이며, 저는 이를 존재 방식의 재구조화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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