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뵙고 그분 안에서 함께 머무는 행위를 하도록 이끄는 성체 조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보다 앞서 생생한 체험을 한 성인과 신앙인들이 있으니,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은 왠지 특별해 보이기 마련이다. 성인은 보통의 신앙인보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충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죄도 많이 짓고 믿음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그들처럼 특별한 존재로 변모하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을 것 같고, 먼 이야기로만 여겨진다. 주님을 과연 뵐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주님을 어떻게 뵐 수 있을까?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느님 안에 사시고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알고 계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루카 10,22)
하느님을 뵈려면 앞서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을 뵈었을 때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신비 가운데 계시기에 사람의 힘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분을 알 수 있게 하셨다.
예컨대 뉴턴이 중력의 존재를 밝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중력을 인식하지 못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지 못했다면, 물건이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면 중력은 밝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직관으로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사람들에게 중력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이처럼 하느님도 우리 힘만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는 분이시다. 하느님 아버지께 권한을 받은 예수님만이 하느님을 직관으로 인지하고 질문을 던져 하느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면, 주님을 어떻게 뵙는지 알 수 있다.
당신 자신을 열어 주시는 분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봄’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복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뵐 수 있다. 마음이라는 창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그 창 너머로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심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철부지 같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뵙는다.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열어 마음이 깨끗한 우리에게 보여 주시니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적 감각을 통해 만나는 하느님
혹자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만으로는 믿음을 가지지 못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상상과 거짓을 진실인 양 꾸며서 이야기하신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된 환경 속에서 형상화된 물질로 이루어진 것들만 볼 수 있는데, 영이신 하느님을(요한 4,24 참조) 어떻게 인간이 알아볼 수 있는지 의심을 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심이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감정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랑, 미움, 분노, 기쁨 등 말과 행동으로 표현은 되지만 형체는 없는 감정들. 마음속으로 숨기면 알아보기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느님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영적 감각을 활용하여 시공간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느끼고, 말씀을 인식하며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 영역과 물질 영역을 분명히 가르신다. 영적 영역이 함부로 물질 영역을 침범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신다. 영적 영역은 영이신 주님의 영역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아닌 영이 현실 삶에 영향을 미쳐,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신다. 다만 인간이 성령을 통해 당신께 다가올 수 있게 하신다. 참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신다.
우리가 ‘육’만으로 숨을 쉬고 세상을 이해한다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과 ‘육’으로 창조되었고, 영을 통해 생명이 되어 성령을 체험하며 하느님을 볼 수 있다. 물질 영역과 다른 영적인 영역이 각자 우리 삶을 이루는 요소이기에 우리에게 가능성이 주어진다. 성령을 통해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뵙고 그분과 영적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