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에 찾아온 암
나는 그녀를 선명히 기억한다. 그녀의 방송을 본 것은 2008년, 그녀는 대장암 환자였다. 장이 좀 예민한 것 외에는 다른 증상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우연히 받아본 대장 내시경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우연히 발견한 종양 하나로 이전까지의 모든 삶이 정지되었다. 어제까지 멀쩡히 아이와 웃고 뒹굴던 엄마,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를 하던 아내, 아침이면 정신없이 출근을 준비하던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졸지에 환자가 돼 버렸다.
그것도 대장암 환자. 고향 전주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들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정밀 검진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오진은 없었다. MRI에도 선명히 나타나는 커다란 종양은 이미 3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엄마의 눈물
진료실에서 그녀를 본 의사도 놀랐다. 만 서른다섯, 대장암 환자라고 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수술을 맡은 의사는 대장암 명의로 알려진 김남규 교수였다. 정확한 진단과 정밀한 수술로 수많은 대장암 환자를 살린 의사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고 입원시켰다. 그녀는 환자복을 입고서 한참을 울었다.
“암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잘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괜찮은데요.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요.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라……. ”
이제 막 열 살이 된 아들을 생각하며 그녀는 참 많이도 울었다. 곁에 있던 남편은 눈물을 닦아 주며 아내가 울보라고 서툰 변명을 했다. 처음 보는 촬영팀 앞에서도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아내가 안쓰러워 그러는 것 같았다.
“잘될 거야. 제일 유명한 의사 선생님 찾아왔으니까…….”
남편은 위로했지만 그녀는 아직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길을 가다가 50대, 60대 분들을 보잖아요. 그러면 막 부러워져요. 자식도 다 컸을 테고…… 저는……아이가…….”
나 역시 엄마였기에 그녀가 차마 더 잇지 못한 인터뷰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아이의 엄마는 살아야 한다. 아이 때문에 살아야 한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자신이 일 년씩 뚝딱 나이를 먹는 한이 있어도, ‘아이가 스무 살은 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욕심이라면 적어도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주고 싶은 마음. 그게 엄마다.
하지만 입원 후 받아본 CT 검사에서 간 전이가 의심되었다. 대장암은 전이율이 높은 암 중 하나인데, 대장암이 전이되기 가장 쉬운 장기가 바로 간이다. 대장암을 진단받는 환자 중 약 15퍼센트에서 간 전이가 동반되며, 치료 후 추적 관찰 중에도 간 전이가 발생하곤 한다.
대장과 간은 같은 혈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혈관을 따라 이동하는 대장암 세포들의 전이가 가장 빨리 발견된다. 그녀의 간에도 두 개 정도의 작은 암이 의심된다고 했고, 정확한 것은 수술장에서 결정될 것이라 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녀의 수술을 지켜보았다. 예외는 없었다. 의심스러웠던 간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대장 절제와 함께 간의 30퍼센트 정도를 잘라 내고 수술이 끝났다. 병기는 4기였다. 큰 수술을 마치고도 그녀에게는 아직 치료가 더 남았다. 6개월가량 항암치료를 받으며 크기가 너무 작아 잘라 내지 못한 암세포나 보이지 않았던 암을 다스려야 했다. 그녀 앞엔 긴 계절이 놓여 있었다.
다시 맞이한 봄
2015년 6월,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촬영팀은 병원에 접근할 수 없었다. 촬영을 할 수 없으니 새로운 <명의>는 당분간 방송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결정한 것이 기존 방송 중 다시 보고 싶은 베스트 편을 골라 방송하는 것이었다. 병원 촬영은 불가했기 때문에 환자들의 생활 공간으로 카메라가 옮겨졌다. 방송에 나갔던 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그녀가 떠올랐다. 잘 살아 있을까? 그녀의 바람대로라면, 살아서 4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고 열 살이던 아이는 열일곱이 되었을 것이다. 제발 살아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에 연락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5년 완치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 그녀는 고맙게도 촬영에 응해 주었다.
우리는 전보다 더 아름답고 당당해진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4기 대장암이었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지나간 날들, 특히 옆에 있던 사람들에겐 시간이 훌쩍 쉽게 가 버린 것 같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내가 허비한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었다.’라는 말처럼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의 하루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그 아까운 시간 동안 소중한 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지내면 좋겠지만, 생존 확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 환자들은 그 시간에 치료를 받는다. 항암 주사를 맞고 독한 약을 먹고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그곳에 쏟아야만 한다.
순간순간이 힘들고 또 안타깝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제일 먼저 그 힘든 항암 치료를 어떻게 받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까마득한 전생을 기억하듯 그때를 떠올렸다.
“수술을 1월에 하고 2월부터 6~7개월 정도 항암치료를 쭉 했거든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올라가는데 계절 변화가 다 느껴지잖아요.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숲이 울창해지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치료를 받는 중에도 재발할 수 있고 전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때는 내가 이 계절, 풍경들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그때 심정은 그랬어요.”
두 번 사는 인생
그 간절한 심정으로 나날들을 보낸 그녀는 마흔다섯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제 몇 년 후면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스무 살이 된다. 수술 후 일 년 만에 직장으로 복귀도 했다. 아프다는 것을 잊고 열심히 몰두할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직장 생활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해요.”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 준 직장과 동료들의 배려 덕분에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가족, 직장, 의료진 모두가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대장암 이후 그녀의 마음이 바뀐 덕분이었다. 그녀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끝이 언제일지 알지 못할 뿐 생명이 있는 우리는 너나없이 소멸한다. 그런데 왜 그녀만 그렇게 살까? 왜 그녀만 그토록 이 삶에 환희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까?
"하루하루가 그냥 감사한 거예요.
지금 제가 사는 것은 정말 제 인생을 다시 사는 거예요.
두 번 사는 거예요."
오늘을 새해처럼 사는 법
2007년, 서른여덟이었던 나는 <명의>를 집필하면서 생의 가장 큰 위기를 맞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통해 나는 삶과 죽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또래보다 조금 일찍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도,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의 간절한 이야기가 나를 그렇게 철들게 했다.
병원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통해 나는 인생의 한 장을 스스로 덮고 다시 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마흔아홉을 넘기고 쉰이 넘으면서 나는 그 이후의 삶을 두 번째라 여겼다. 커다란 고비를 맞아야만 인생이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책이 사람을 가르치듯 나에겐 각각의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이었다.
다시 없었을 시간이라 생각하니 일상은 언제나 ‘용맹정진’이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눕지도 먹지도 않으며 사자와 같이 용맹한 마음으로 참선하는 수행자들처럼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이 생, 용맹한 기운으로 정성 들여 살아야 한다. 어제까지의 나를 버리고 오늘부터는 새로 사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새날이고 그 새로움은 덤이다. 진정한 ‘새해’는 그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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