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사람의 손에서

영성과 신심

기적은 사람의 손에서

떠나보낸 기억 위에 다시 놓인 삶

2026.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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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라는 세계

 

한 사람의 존재로 세상이 충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곁에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보다 더 막강한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천둥 벼락이 내리친다 해도 나는 끄떡없을 터였다. 할머니만 계시다면 말이다. 미숙아로 태어난 첫 손녀가 무사히 살아나기를 기도했던 할머니께도 나는 절대적인 아이였다. 나의 무사함과 편안함과 포만감이 당신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사흘 내내 방이 절절 끓도록 불을 때 고아 낸 조청의 첫맛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뜨끈한 손두부가 완성되었을 때도 크게 한 점 떼어내 갖은양념이 된 간장을 살짝 얹어 제일 먼저 내 입에 넣어 주셨다. 할머니의 존재만으로도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충만했던 날들. 그런 날이 계속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삶 곁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던 어린 나이였다. 할머니는 계속 할머니로, 나는 계속 손녀로, 세세만년 함께 살 줄로 알았다.

 


 

처음 배운 이별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초겨울, 할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대전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기적을 바랐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쓸 수 없는 나흘이 지났고 할머니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뇌출혈이라고 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손녀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그토록 아끼던 손녀를 한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때 할머니는 쉰여섯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이 거짓말 같았다. 할머니를 묻고 흙을 뿌릴 때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했으면서 어떻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날 수 있을까? 말하고 웃고 움직이기도 하는 사람이, 풀도 아닌 사람이, 잠자리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아이의 할머니가 되어 있어도 괜찮으니, 세상 끝 어디에서라도 살아만 계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기적이라면 나는 기적을 믿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마음 좋게 믿고 있으면 할머니가 기적처럼 돌아오실 것 같았다. 다시 내 할머니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3학년이 되어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3년 탈상을 끝내고 거실에서 빈소가 사라진 날, 아버지는 옥상에 서서 오래오래 하늘을 바라보셨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뇌졸중의 골든 타임, 의학의 반전

 

한순간에 할머니를 쓰러트린 것은 뇌졸중이었다. 뇌졸중은 크게 뇌혈관이 좁아져 혈액 공급이 줄어드는 뇌경색,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나뉘는데, 할머니의 경우 뇌출혈로 더 위급했다. 뇌졸중의 골든 타임은 3시간이다.

 

만일 뇌경색일 경우엔 3시간 안에는 혈전 용해제를 써서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하고, 반대로 뇌출혈일 경우엔 혈액 응고제를 써야 한다. 하지만 3시간이 지나고 나면 약을 쓰기 위험한 상태가 된다. 뇌혈류의 부족으로 인한 뇌 손상의 후유증도 심각하다. 흔히 풍을 맞았다고 하는데, 편측 마비가 오거나 언어 마비, 기억력 장애 등이 남는다.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뇌졸중 환자들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무기력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손도 써 볼 수 없는 환자가 대부분이었어요. 기적을 만들어야 했죠.”

 

뇌혈관을 치료하는 신경외과 명의 오창완 교수는 뇌졸중 치료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뇌졸중이란 그저 뇌출혈이 생겨 쓰러지거나 뇌경색으로 인해 말 그대로 풍을 맞아야알 수 있는 병이었다. 수많은 환자들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살아남은 환자들은 큰 후유증을 겪으며 남은 인생을 보내야 했다. 당시만 해도 뇌혈관 수술의 70퍼센트는 개두술, 즉 두개골을 여는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2000년으로 들어서면서 뇌혈관 치료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머리를 열지 않고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4년에는 뇌혈관 수술의 50퍼센트가 혈관 내 수술이었다. 한두 번쯤 들어보았을 코일 색전술이 바로 그것이다.

 

코일 색전술은 허벅지 동맥을 통해 가느다란 카테터를 내경동맥까지 밀어 넣어 치료하는 방법이다. 대퇴부에 있는 동맥에 가느다란 철선을 넣어 약 1미터 거리에 있는 뇌동맥류까지 이동한다. 그다음 약해져 있거나 막혀 있거나 터질 위험이 있는 부분에 스텐트를 펼쳐 주고 코일을 채워 넣는 수술법이다.

 

심혈관 치료에도 사용하는 바로 그 스텐트 시술이다. 최근 뇌혈관 질환은 이러한 치료법과 영상 검사 덕분에 사망률이 줄어들고 있다. 가족력이 있거나 고위험군인 경우 미리 혈관의 상태를 검사해 보고 뇌졸중이 생기기 전에 적절한 치료와 예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권역별 전문 병원이 마련되어 체계적으로 급성기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떠나보낸 기억, 다시 놓인 삶

 

햇살이 좋은 가을날이었다. 모처럼 느긋한 주말을 보내던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동생이었다.

 

언니, 엄마가 쓰러지셨어!”

 

동생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가을 단풍을 보러 절에 가셨다가 벌에 쏘인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가까운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는 것이었다. CT 검사 결과, 엄마는 뇌출혈 소견을 받았다.

 

언니, 엄마를 어디로 모시고 가야 할까? 대전으로 갈까? 서울로 갈까?”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뿐, 엄마를 어디로 모시고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막막했다. 나는 연락처에 있는 의사 선생님 한 분께 전화를 드렸다. 대답은 확실했다.

 

만일 뇌졸중이라면 골든 타임이 중요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대전에 있는 종합 병원으로 가세요. 가면 정확하게 진단 한 후 응급 처치를 할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통화하시지요.”

 

여러 가지 뇌혈관 검사 결과 뇌경색이었다. 신속한 치료 덕분에 엄마는 의식을 찾고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편측 마비와 기억력 장애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일상을 회복하는 동안 엄마의 목에 다소 큰 목걸이를 하나 해 드렸다. 목걸이에는 뇌혈관 질환을 앓는 환자입니다. 만일 의식을 잃었거나 말을 하지 못할 경우 아래 연락처로 연락해 주세요.”라는 내용을 적었다.

 

뇌경색이나 뇌출혈은 아무 때나 또 아무 데서나쓰러질 수 있다. 쓰러져 말을 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을 수도 있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임을 알리는 표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마는 두 달에 한 번 신경외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뇌 혈류량 검사도 하고 필요할 땐 인지 검사도 한다. 뇌경색의 재발 가능성 때문에 혈전 용해제와 혈압약을 처방받는다.

 

다행인 것은 뇌졸중에 대응하는 방식이 삼십 년 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때는 할머니가 쓰러지고 나서야 뇌출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위험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그에 맞는 치료와 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골든 타임 안에 병원으로 가기 위해 나는 권역별 뇌혈관센터 연락처를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다.

 


 

기적은 사람의 손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운 치료법을 만날 때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아프다. 40여 년 전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처럼, 지금이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과 잃어버린 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명의>를 집필하면서 알았다. 늘 제자리인 것 같지만 의학의 발전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때로 의사의 소명이나 직업의식이 의심받기도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 한 명의 환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잠을 줄이고 개인의 삶을 두 번째로 놓는 의사들. 어쩌면 기적은 그렇게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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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작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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