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가톨릭 예술

삶의 끝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슬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책, 《슬픔의 해석》

2024. 11. 28
읽음 46

나의 친할아버지는 2013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6년 뒤인 2019년에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할아버지는 암수술로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노환으로 조금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상황은 달랐지만 양가 할머니들은 두 분 모두 크게 애통해하셨다. 고인이 되신 두 분은 적은 연세가 아니셨고, 특히 친할아버지는 무뚝뚝한 경상도분이신데다 오래 투병하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표현하시는 슬픔에 나는 크게 놀랐었다. 어쩌면 저리도 깊이, 그리고 오래 슬퍼하실까, 철없이 묻는 나에게 엄마는 “자식 잃은 슬픔이 첫째요, 그다음이 배우자, 그다음이 부모”라고 하셨다. 이럴 수가!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저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크구나, 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정작 할머니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된 것은, 우연히 읽게 된 한 권의 책 덕분이다. 제목부터 마음을 흔들어 놓는 책, 《슬픔의 해석》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기 전과 후를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그려 낸 에세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저자 리사 슐먼은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자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인생의 동반자였던 남편 ‘빌’을 갑작스러운 암으로 잃는다. 이 책은 빌이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다가 임종을 맞기까지의 내용이 담긴 1장, 그의 죽음으로 인해 바뀐 일상과 상실로 인한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2장, 마침내 상실 이후, 새로운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저자는 본인이 의사로 일해 왔음에도 막상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상실을 경험하는 당사자로서의 진술이 나에게는 할머니들의 슬픔과 혼란을 이해하는 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이 큰 도움을 주었다.

죽어 가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고 많은 것을 함께 나눈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인생의 끝으로 걸어가 잠시나마 저세상을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다. (28쪽)

톨스토이는 죽음을 ‘검은 구멍’으로 표현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가해한 두려움, 이 책에서는 그러한 복잡한 감정이 일상적인 어조로 그려져 도리어 슬픔을 자아낸다. 한 명은 삶의 공간에 남고, 다른 한 명은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 위의 외로움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외할머니가 임종을 앞둔당신의 남편을 바라보던 눈빛을, 작가의 언어를 만난 지금에야 비로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빌의 죽음 이후 리사는 자신이 어딘가 조금 ‘이상해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한다. 《슬픔의 해석》은 저자가 자신의 모습을 의학적으로 관찰하려 애쓰는 대목에서 여타의 애도 일기와는 다른 성취를 보여준다. 2장의 전반에 걸쳐 저자는 문득문득 현실성을 잃어버리는 해리 증상,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정체성의 혼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인증 등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해석하려 한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과 여러 가지 최신 의학 연구를 통해 리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가까운 이를 잃는 것은 단순한 슬픔 그 이상이며 ‘감정적 외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탄의 감정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과 뇌, 신체의 손상과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 감정적 외상으로 인한 신경학적, 심리적, 신체적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며, 상처가 낫는 속도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듯이 감정적 외상에서 완전히 치유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든지 ‘이렇게 슬퍼하면 고인이 좋은 곳으로 못 가신다.’는 등의 말을 건네곤 한다. 리사의 통찰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말들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위로보다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서두에서 고백한 할머니들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했던나의 경솔함을 반성한다. 경험하지 못한 슬픔에 대해서 나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되었던 것이다. 오히려상실을 겪은 이에게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의 말이 큰 도움과 위로가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슬픔의 해석》을 상실의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그와 나눴던 일상, 기쁨과 슬픔, 추억을 포함한 삶의 절반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경험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명제가 슬픔을 덜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언젠가, 어떤 형태로 다가올 이별을 한번쯤 미리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는 다른 이의 귀중한 경험으로 조금씩 삶의 식견을 늘려 간다. 바로 이책이 내게 해 준 방식처럼. 리사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만났지만 마침내 글쓰기라는 방식으로 ‘빌이없는 세계’를 살아내는 방법을 찾았다. 상실 이전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빌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나게 되었다. 상실 이후에도 이렇게 사랑은 계속된다. “비극은 우리삶을 멈출 수 없다.”

by. 율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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