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 40이라는 일수에 대하여

교리와 전례

사순 시기, 40이라는 일수에 대하여

부활의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5.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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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오랜 논쟁이 있었으니, 바로 사순 시기는 정확히 며칠인가?’라는 주제였습니다. 무수한 담론이 입에서 입으로, 문헌에서 글들로, 웹사이트에서 SNS로 오고 갔습니다. 이 글 또한 그 담론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이 논쟁을 종결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 의견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순, 40일을 보내는 시기

사순’(四旬)40을 가리킵니다. ‘육순 잔치라고 안 하고 회갑이라 하는 것은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자신이 태어난 해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칠순이나 팔순은 사순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7080을 가리키는 한자어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40이라는 숫자의 틀에 맞게 사순 시기를 정확히 40일로 맞춰보려는 경향을 가진 많은 주장을 접하게 됩니다. 다양한 주장이 담긴 글을 종합해 볼 때, 숫자의 틀에 맞게 보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①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다.

② 사순 시기의 주일들은 축제의 날이기 때문에 사순 시기가 아니라서 제외해야 한다.

 

이 조건에 따라 계산을 해 봅시다.

재의 수요일부터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까지 4,

다음날인 사순 제1주일부터 시작되는 주간이 5개니까 5주간×7= 35,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되는 성주간이 성토요일까지 7,

그리고 주일들을 빼야 하니 –6, 이를 다 합하면 40일이 딱 나옵니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전제 조건은 이제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사순 시기는 언제까지인가?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지만, 성토요일까지는 아닙니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의 28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미사 직전까지 계속된다.”

이는 사순 시기가 성토요일이 아니라 성목요일 저녁에 거행되는 주님 만찬 미사 직전까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한 날에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라고 규정함에 따라 주일은 사순 시기에 속하게 됩니다.

 

이 규범에 따라 사순 시기의 일수를 다시 계산해 봅시다.

재의 수요일부터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까지가 4,

다음날인 사순 제1주일부터 시작되는 주간이 5개니까 5주간×7= 35,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 시작되는 성주간에서 성목요일 저녁 미사 전까지가 5,

이를 합하면 44일이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보내는 사순 시기는 44일인 것입니다.

 

 

40일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노력

혹시 40이라는 숫자가 딱 나오지 않아 뭔가 마음이 불편하신가요? 아니면 전례 개혁 이전의 규범에 따라 옛 셈법이 더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옛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담긴 40이라는 숫자가 가진 상징성에 맞추어 정확한 40일간의 사순 시기를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 동안 그들은 단식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철저하고 엄격하고 진지한 단식이었습니다. 성찰과 참회와 회개의 기도를 올리면서 실제로도 자신의 속을 비우는 시기를 살았던 것입니다. 단순히 40이라는 숫자가 맞지 않아 불편하게 된 우리네 마음가짐과는 달리 아주 투철한 신앙심으로 40일의 단식일을 지키고 싶어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40일을 연속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일을 단식하는 날에서 제외하게 됩니다. 사순 시기 주일은 사순 시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순 시기의 주일들의 전례문들은 사순 시기의 그 의미를 더욱 잘 드러내 주기 때문에 오히려 주일만큼은 사순 시기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주일이 단식하는 날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40일의 단식 시기를 완벽하게 채우고자, 더 앞당겨서 사순 시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덕분에 원래 단식을 시작하던(즉 사순 시기가 시작되던) ‘사순 제1주일보다 미리 그 전 주간 수요일부터 단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재의 수요일의 기원입니다. 오늘날 44일에서 재의 수요일부터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까지의 4일을 빼면 다시 완벽한 40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식하는 일수를 정확히 맞추고자 노력했던 옛 전통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재를 축복하고 머리에 얹는 예식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성토요일은 1960년대 전례 개혁 이전까지는 사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셔서 묻히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Scrum Triduum Paschale)이란 명칭을 만들어 그 기념의 정신을 복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의 저녁 기도까지의 파스카 성삼일이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 사이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단식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사순 시기를 보내려고 했던 옛 그리스도인들, 사순 시기의 주일들에서 그 시기의 전례적인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난다는 사실, 교부들의 가르침으로 복구시키려던 전례 개혁의 정신.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사순 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니 일수에 관한 논쟁보다는 실제로 사순 시기를 사순 시기답게 살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전례학을 전공했고,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살아갑니다. 신자들이 바른 전례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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