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전례, 계절마다 밥상이 바뀌듯이

교리와 전례

사계 전례, 계절마다 밥상이 바뀌듯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께로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1983년에 발표된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의 일부 가사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봄이 되면, 여름이 되면, 가을이 되면 그리고 겨울이 되면 우리의 강산이 바뀌고, 우리의 식탁에 놓이는 음식이 바뀌고, 우리의 옷, 우리의 대화가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은 사계절의 그 뚜렷함이 많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있고, 여름과 겨울의 그 더위와 추위는 점점 맹렬해진다는 것을 한반도에 살며 체감하곤 합니다. 〈아! 대한민국〉의 가사 내용의 (사계절에 관한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 의미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에 많은 아쉬움을 품게 됩니다.

 

사계 미사란 무엇일까

결이 조금은 다르지만, 우리 교회 또한 이 사계절의 시작을 전례적으로 맞이해 오다가 그 의미가 바뀐 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계(四季, Quattuor anni Tempora) 전례입니다. 로마 교회는 각 계절이 시작한다고 여겼던 사순 제1주간(), 성령 강림 대축일 이후 첫 주간(여름), 성 십자가 현양 축일(914) 이후 주간(가을), 대림 제3주간 혹은 제4주간(겨울)의 수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에 사계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이 세 요일을 전례일로 지정하고 각 계절이 올 때마다 특별히 마련된 미사 기도문과 독서 목록으로 성찬례를 거행한 것입니다. 또한 전례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도 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간을 단식과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하는 주간으로 지냈습니다.

 

사계의 토요일이 되면 신자들은 저녁에 성당에 모여,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구약 성경의 독서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파스카 성야 때 많은 독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노래하고 기도를 바치는 것처럼, 같은 형식으로 6개의 독서로 이루어진 말씀 전례를 거행하고 성찬 전례를 통해 비워지고 깨끗해진 내 안에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것으로 영적인 양식을 채우고 축제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 사계의 모습은 당시의 농경 사회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봄에는 새싹과 꽃, 여름에는 밀과 보리, 가을에는 포도, 겨울에는 올리브를 수확하는 시기였고 이는 각 계절을 상징했습니다. 미사의 기도문과 말씀 전례 독서들은 이 상징과 연관되거나 단식이나 참회, 기도와 연관된 성경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사계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일 년에 4번씩, 계절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단식과 절제의 생활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수확에 대한 감사와 찬미를 드리면서 모든 계절과 시간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는 성가가 우리의 찬미가 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님께 감사드리는 그리스도인

한가지 설이 있습니다. 일식당에서 먹는 튀김 요리인 덴푸라(天ぷら)’가 사계를 가리키는 라틴어 Quattuor anni Tempora 중에 절기를 뜻하는 ‘Tempora(템포라)’에서 따와 명명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선교하던 시기에 사계 전례 주간에 금육을 지키기 위해 육류 대신 채소들을 기름에 튀겨서 먹는 것을 보고, 일본인 신자들이 이게 어떤 음식인지 물었다가 선교사들이 템포라때 먹는 것이라 대답하여 그렇게 명명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름이 어찌 붙여졌는가를 따질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추측에서 로마 교회의 사계 전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켜져 오던 전례적 전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전례에서 이 사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이 반포된 이후 시행된 전례 개혁에서 이 사계 전례를 고유 전례 시기 부분에 수록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게 됩니다. 한 지역만을 위한 교회가 아닌 보편 교회가 마주하게 된 여러 처지와 문화를 헤아려 볼 때, 사계 전례는 분명히 개별 교회마다 받아들임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성찰한 덕분입니다. 사계절이 없는 적도나 극지와 가까운 지역, 사계절의 순서가 다른 남반구 지역, 농경 산업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지역의 개별 교회들은 이 사계 전례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보편 교회를 모두 아우르면서 동시에 이 전례적 전통을 지켜 갈 방안은 사계 전례문을 기원 미사부분에 수록하는 것과 지역의 주교회의가 정할 수 있도록 열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의 45~46에서 이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특별 간구와 사계의 날에 인간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소망, 특히 땅의 수확과 인간의 노동을 위하여 주님께 간청하며 공적으로 감사를 드린다. 주교회의는 특별 간구와 사계의 날의 시기와 거행 방법을 그 지역과 신자들의 사정에 맞도록 정할 수 있다.”

 

사실, 전례문이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지를 알아보기보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회개와 재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는 전통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계절이 바뀌면 밥상도 바뀌듯이, 우리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께로 다시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침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3, 사계의 봄 전례가 거행되던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말입니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전례학을 전공했고,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살아갑니다. 신자들이 바른 전례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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