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줄로 요약했어요
|
시작 기도로 이사야서 54장 10절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 54,10)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라는 구절의 공동 번역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사랑은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
피정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사랑, 자애’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과 맺은 평화의 계약 역시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 있었을 뿐, 그로 인해 우리 마음이 다치고 지치고 만신창이가 된 것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우리를 떠나거나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상 속 피정을 통해 주님과 다시 만나 화해하고자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루카 24,13-35 참조),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위로와 치유, 희망의 여정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사야서 말씀처럼 우리는 수치와 부끄러움, 창피스러운 일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우리 마음을 잘 아시고, 우리가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제 그분과 함께하는 오붓한 시간을 마련해 봅시다.
일상 안에서의 피정, 가능할까?
우리에게 의지만 있다면 일상에서의 피정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함께하는 동료(피정 크루)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보통 피정은 외딴곳,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 같은 장소에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정, 혹은 성당이나 인근 성지에서도 피정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해성사를 하러 가는 날이 피정의 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명동대성당 상설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를 보는데, 출발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한 시간 정도 이동해, 성당에 들러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고해합니다. 고해가 끝나면 잠시 성당에 머물며 보속을 하고,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지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용서받아 새로 태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광야’에서
피정을 할 때는 일상을 떠나는 수고가 뒤따릅니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상을 떠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피정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산속 깊은 곳의 수도원에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광야’란 일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일상에서 광야를 만들어 볼까요? 까를로 까레도 수사님은 《도시 속의 광야》라는 책에서, 도시 속에서 체험하는 광야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이끌려 하십니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삶에 지쳐 쉬고 싶을 때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시는 때입니다. 일상의 소음과 고민에서 벗어나, 주님과 마주 앉아, 혹은 주님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머무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상상력을 발휘해 봅시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났을 때(탈출 3,1-6 참조),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을 만났을 때(1열왕 19,4-18 참조)를 떠올려 볼까요? 또는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시고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는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마태 4,1-11 참조). 우리에게 ‘외딴곳’ 혹은 ‘광야’란 어떤 곳일까요?
문득 이스라엘에서의 광야 체험이 떠오릅니다. 성지 순례 중에 광야에서 반나절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 풀조차 자라지 않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광야.
메마른 땅, 뜨거운 태양, 세찬 모래 바람.
문명의 이기, 세상의 것들이 아무 소용 없는 곳.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적나라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와 함께 머물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광야는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마주하고,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어지러운 내면 돌아보기
피정을 시작하며,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는지, 얼마나 어지러운 상태로 살아왔는지 살펴봅시다. 이때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루카 10,38-42 참조)는 좋은 묵상 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손님맞이하느라 분주했던 마르타, 그리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마리아. 나는 둘 중에 누구의 모습과 더 가까울까요? 마르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혹은 마르타의 입장에서 마리아를 두둔하던 예수님께 불편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마르타였다면, 우리 마음을 어디에 빼앗긴 채 분주히 살아왔는지 묻고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나요?
내 마음을 차지하던 것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때로 마음속에 많은 분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상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감정의 굴레 속에서도 어떤 갈망이 느껴지지 않나요? 쉬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고요히 머무르고 싶은, 분주함에서 벗어나 홀로 머물고 싶은 열망을 느끼지는 않나요?
혹시 그 목마름이 ‘현존’에 대한 목마름은 아닐까요? 나의 사정을 알아주고 고민을 들어주며 나의 마음속 짐을 내려줄 수 있는 누군가의 ‘현존’ 말입니다. 곁에 앉아 조용히 말씀을 건네는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요?
마르타와 마리아는 어쩌면 우리의 두 가지 모습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가 마르타였다면 이제 나는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는 마리아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묵상해 봅시다.
|
✍ 묵상하기 루카 복음 10장 38-42절 말씀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해 봅시다.
1. 나는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나요? 2.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갈망하나요? |
🔗 이 주제가 흥미롭다면, 더 읽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