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언뜻 보면 이런 가르침은 현실에서 실천하기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버림의 미학’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것이 진정한 참된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는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 그 빈자리를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채울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박진수 신부님의 주일 강론을 소개합니다. |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3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복음사가들에 비해 이런 표현을 더 자주 사용했던 루카 복음의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라’, 현실과의 괴리
‘모든 것을 버려라’라는 가르침은 복음을 읽다가 종종 만나게 되는 구절이지만,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압니다. 우리는 ‘가진 것들을 모두 버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라면서, ‘버림’에 관한 복음의 가르침을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 정도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왜 버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반대로 ‘소유하려는 마음’을 함께 살펴보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단지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늘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심지어 끊임없이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더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는 합니다. 이러한 습성이 있는 나약한 인간이다 보니 ‘모든 것을 버려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버림의 미학
종교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표현은 아니지만, ‘버림의 미학’이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그 표현 안에서 오늘 복음 말씀을 살아가고 실천하기 위한 작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버림으로써 오히려 더 본질적인 아름다움이나 가치가 드러난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버림의 미학’은 여러 분야에서 통용됩니다. 예를 들어, 물과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수묵화도 버림의 미학을 드러냅니다. 텅 빈 공간인 여백을 중요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선과 명암을 이용하여 대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버림의 미학이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소유에 대한 집착 등을 내려놓는 태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버림으로써 나 혼자만 갖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보다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버림의 미학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려고만 하는 우리들에게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좋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 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버리면서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닫는 지혜로움입니다. 수묵화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현해 내는 물과 먹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소유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하지만, 삶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빈자리를 사랑과 나눔으로 채워 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버림의 미학이 의미를 가지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대신 채울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
오늘 복음은 버림의 미학을 알려 주면서 동시에 그 자리를 대신 채울 숭고한 가치를 선포합니다. 바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이타적인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오늘 복음 내용 그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보여 주신 굳건한 믿음과 용기는 신앙의 훌륭한 모범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모습의 순교가 요구됩니다. 바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것, 즉 이기적인 사랑을 버리고, 이타적인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순교자들이 보여 주신 삶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을 위해 일상에서 내가 봉헌할 수 있는 희생과 사랑은 무엇인지 찾아봅니다.
나는 평소 어떤 것에 집착하나요?
내가 가장 내려놓기 힘든 집착이나 소유가 무엇인지 성찰하며, 예수님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의 상태를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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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성제 신부] 자기를 채워야 산다고 요구하는 세상, 자기를 버려야 산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