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얘야, 거기는 네가 앉는 자리가 아니란다.” 이처럼 앉는 자리에 특정한 의미나 역할이 따르는 공간이 있습니다. 음식점이나 자동차, 회의실 같은 곳이 그렇습니다. 이때 말하는 ‘상석’이란 윗사람이 앉는 자리이자 윗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위치를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초대받으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루카 14,8)
인간이라면 다른 이들보다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원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남들보다 자신을 높이려 애쓰기보다 겸손한 태도를 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겸손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겸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겸손이란, 단지 낮은 자리를 찾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보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겸손을 갖춘 삶의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첫 번째, 겸손은 이 세상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권력과 돈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때로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창조주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씨앗조차 꽃피울 수 없고, 죽음 앞에서 무력합니다.
“인간은 한낱 그림자로 지나가는데 부질없이 소란만 피우며 쌓아 둡니다. 누가 그것들을 거두어 갈지 알지도 못한 채. 그러나 이제 주님,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께 있습니다.”(시편 39,7-8)
시편 저자에게 인간이란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희망은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결국 나의 관심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 머물 때,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자 할 때 겸손의 삶이 시작됩니다.
두 번째, 겸손은 너와 내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인정할 때 드러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이들과 참으로 많은 비교를 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나은 사람이겠지?’, ‘내가 저 사람보다는 잘해야지.’ 하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과연 누가 더 뛰어나고, 누가 더 잘난 사람일까요? 오히려 모두 다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인정하며 한 형제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겸손은 바로 내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마음속까지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항상 죄를 짓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죄의식은 우리를 어둠으로 이끄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나를 나쁜 사람으로, 다른 이들 앞에서 초라한 사람으로 만드는 죄의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긍정적인 죄의식입니다.
이 죄의식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다른 이들도 나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겸손과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겸손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께 시선을 돌리며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겸손은 비로소 시작되며, 그분 안에서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