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일 학교 교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신학교에 입학하고 사제가 될 때까지 가장 많이 듣고 좋아했던 복음 성가가 있다.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참된 삶을 보여 주셨네 / 가시밭길 걸어갔던 생애 /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 죽음 앞둔 그분은 나의 발을 씻기셨다네 /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 그 모습 바로 내가 해야 할 소명 /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 먼 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 주소서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참된 삶을 보여 주셨네 / 가시밭길 걸어갔던 생애 /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 죽음 앞둔 그분은 나의 발을 씻기셨다네 /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 그 모습 바로 내가 해야 할 소명 /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 먼 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 주소서 / 나를 안아 주소서
_<내 발을 씻기신 예수>, 갓등 중창단 1집
이 가사가 마치 나에게 주시는 사명에 대해 주님께서 일러 주시는 듯했다. 내가 해야 할 소명은 바로 당신이 아파하고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가서 일하는 것임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뒤를 이어 레오 14세 교황님도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오늘 라파엘로가 그린 성화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성모님과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을 그린 천재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는 서른일곱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오늘 함께 볼 성화는 라파엘로가 그린 ‘벨베데레 성모자(Madonna del Belvedere)’ 혹은 ‘초원의 성모자(Madonna del prato)’라고 불리는 그림이다. 이 성화는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라파엘로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검은 방울새 성모자’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사’ 등 여러 점의 성모자 성화를 그렸다.
이 성화는 피렌체 타데이 가문에서 1773년에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빈 미술사 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벨베데레 성모 혹은 성모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그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드넓은 초원 위에 사이좋게 모여 있는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일까?
이 성화를 잘 살펴보면, 성모자의 시선이 모두 세례자 요한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한다. 세례자 요한이 들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십자가나 ‘황금 방울새의 성모(Madonna of the Goldfinch, 1505~1506)’에서는 황금 방울새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 성화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바치는 십자가와 그것을 받으시는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이는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실 ‘사명’을 의미한다. 아름답고 평안한 모습 속에서 라파엘로는 그 십자가의 사명을 다양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모님과 예수님,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피렌체로 보이는 먼 곳의 도시와 강과 자연은 모두 같은 색조로 이어진다.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는 성모님의 우아한 얼굴과 사랑스럽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에는 어머니로의 애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금빛 테두리가 둘린 붉은 상의는 푸른색 치마와 대조를 이루는데, 일반적으로 붉은색은 죽음과 고통 그리고 열정을, 그리고 푸른색은 천상를 상징한다. 즉, 라파엘로는 성모님과 그분의 의상 안에서도 천상 어머니로서의 교회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어머니로서 겪으셔야 할 아픔과 함께 그분을 향한 열정을 드러낸다. 라파엘로의 이러한 표현법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John the Baptist)>(1507)를 포함한 대부분의 라파엘로의 성모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라파엘로의 우아한 인물 묘사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드넓은 초원 속에서 세 명이 이루는 삼각형 모양의 안정적 구도를 통해 라파엘로가 추구했던 이상이 실현된다. 바위에 앉아 계신 성모님의 머리에서부터 왼쪽으로는 무릎 꿇은 세례자 요한을, 오른쪽으로는 성모님의 발을 밖으로 내밀게 하여 철저히 삼각형 구도를 지키려 하였다. 성모님은 우아한 자태로 앉아 아기 예수님을 양팔로 조심스럽게 감싸안고 세례자 요한을 자애롭게 바라보고 계신다.
일반적으로는 세례자 요한이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 이 성화는 세례자 요한이 무릎 꿇고 십자가를 예수님께 바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와 성모님의 시선이 그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보아도 성모님과 예수님, 세례자 요한이 서로 시선을 나누는 치밀한 구성 속에서 인물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파엘로는 스승이었던 페루지노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뿐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연구했고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성화에서도 라파엘로 작품의 특징인 ‘우아한’ 인물들의 묘사와 ‘부드러운’ 색채의 화면 구성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후광이 거의 보이지 않더라도, 이들의 성스러움은 그림 안에 훤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인물들을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조형적으로 견고하게 형태를 표현하고, 주변의 풍경은 짙은 푸른색이지만 지평선을 향해 가면서 점차 매혹적이고 부드럽게 옅어져 가는 모습이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와 같이 윤곽선을 스펀지처럼 부드럽게 번지듯 표현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특징들이, 많은 사람에게 라파엘로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세 인물은 모두 긴밀하게 교감하고 있다. 머리를 살짝 왼쪽으로 돌린 성모님의 시선은 십자가를 바치는 어린 세례자 요한에게로 향하지만, 그 십자가를 받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예수님을 손으로 받치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기울어진 몸이 십자가와 마주하여 자연스럽게 또 다른 작은 삼각 구도를 이룬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성모의 시선과 제스처를 세심하게 처리하여, 감상자들이 두 어린이에게 주목하도록 이끈다.
세례자 요한의 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을 담은 그림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그림에서 후광을 지닌 성스러운 존재인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포동포동하고 사랑스러운 아기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상징인 털옷을 입은 어린 세례자 요한은 무릎을 꿇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가 봉헌하는 십자가는 가늘고 긴 지팡이 형태로 되어 있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십자가가 아닌 ‘황금 방울새’처럼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하는 다른 상징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성모님 옆 초원에 핀 붉은 양귀비꽃 역시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암시하는 도상이다. 또한 예수님 발밑 들딸기는 다양한 상징으로 해석되는데, 무엇보다 작고 빨간색을 통해 마치 훗날 그분에게서 떨어지는 핏자국을 상기시킨다. 그 외에도 세 잎은 삼위일체를 뜻하기도 한다.
반면 세례자 요한 발밑의 들국화로 추정되는 꽃은 하얀색이다. 흰색은 일반적으로 순결, 무죄함, 고귀함 등을 상징한다. 이는 즉 세례자 요한의 구약의 시대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의 시대가 시작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저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역사가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곧 그분의 사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사명은 이제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는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주님께서 아파하시고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내가 달려가는 것,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