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5일 간격으로 독서 모임이 잡혔다. 먼저 하게 된 모임에서는 《언어의 무게》라는 장편 소설, 뒤이은 다른 모임에서는 《가짜 노동》이라는 교양서를 다루기로 되었다. 독서 모임이 없었다면 아마 두 권 모두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2학기 수업이 마무리된 후, 《언어의 무게》부터 읽기 시작했다. 장편 소설 읽기는 뭉텅이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다. 양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읽다가는 인물 이름도, 배경 상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다시 처음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는 언제나처럼 인내가 필요했다. 낯선 인물이 사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곧 그 세계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소설 주인공은 번역을 하는 사람이다. 나와 동업자다. 번역을 하면서 서로 다른 언어가 지닌 서로 다른 표현력, 번역 문장에 쉼표를 찍어야 할지 말지, 쉼표에 매달리는 일이 세계의 빈곤 문제에 비하면 너무 사소하지 않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단어에 숨은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고 자기 번역을 혹평하는 기사를 참아 낸다.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이력에 번역은 없는데 이토록 잘 그려 낸 것을 보면 번역을 해 보았거나 가까이에 번역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읽다 보니 흥미로운 지점이 또 발견된다. 번역가인 주인공이 만난 인물 중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번역가 안드레이가 나온다. 안드레이 말 속의 러시아어 단어는 음차되지 않고 러시아 문자 그대로 본문에 등장한다. 내가 전공한 러시아어를 우리말로 된 책에서 마주하는 것은 참 독특한 경험이다.
이 장편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은 주인공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신변 정리를 해 가던 중 병원의 진단 사진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주인공이 무엇을 정리해야 했는지, 어떤 삶을 새로 시작했는지 알려면 그때까지 그가 살아온 세월이, 그 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진 모든 사람이, 거쳐 온 경험과 생각이 모두 필요하다. 그렇게 주인공이라는 한 사람이 온전히 재구성되어야만 ‘나’라는 독자가 그 삶을 충분히 간접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래서 장편 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나는 생각했다.
독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책을 추천했던 분이 발제자가 되어 책 속에서 예닐곱 부분을 뽑아 왔다. 한 부분씩 소리 내어 읽으면서 각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동료 선생님이라 주인공이 번역하면서 하는 고민, 주인공이 죽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한부 삶을 정리하는 과정, 주인공이 번역을 넘어서 자기 언어를 찾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장면을 찾아왔다. 번역가인 내가 번역가인 주인공의 경험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다음으로 각자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추가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죽음이라는 화두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짚었다. 주인공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치료약을 거부한 삼촌, 말기암 선고 후 모르핀을 모은 아버지, 연인과 바람을 피운 남자를 계단에서 밀쳤는데 그만 죽어 버린 바람에 8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 안드레이, 오랜 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환자 아내를 베개로 눌러 죽이고 유죄 판결을 받는 노인의 재판 등 죽음을 마주하는 여러 모습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역시 장편 소설이 갖는 매력인 모양이다. 《언어의 무게》는 글과 언어를 핵심 줄기로 하는 작품이지만, 죽음을 다루는 혹은 가족 관계를 다루는, 그도 아니면 공간에 대한 기억을 다루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줄기를 중심으로 볼지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음 책 《가짜 노동》은 시간을 쪼개 급하게 읽어야 했다. 미리 읽어 두지도 못했는데 앞선 독서 모임 이후 온갖 송년 일정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의 무게》를 읽은 후 작가에 관심이 생겨 전작 장편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까지 읽어 버리느라 시간을 쓴 탓도 있었다.
《가짜 노동》은 사회와 인류를 위해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노동이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면서 자원을 낭비하고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현실을 고발한다.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의 상황을 다루지만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사무직과 관리직 그리고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각종 전문직이 급증하는 상황은 우리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할 일 없이 사무실에서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 괜한 일을 만들어내고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현상이 지적된다. 관리자를 위한 행정 처리 때문에 본연의 업무 시간을 줄여야만 하는 교사, 의사, 상담사의 처지도 조명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일, 예를 들어 아무도 읽지 않을 보고서 만들기는 과감히 거부하라고 이 책에서는 권고한다. 또 관리자에게는 직원들을 감시하는 대신 신뢰하고 권한을 주라고 한다. 직원의 97%가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3%가 혹시 일으킬지 모르는 문제를 막기 위해 인사 관련 규정을 만들고 실행하느라 시간과 비용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가짜 노동》을 읽으면서 여러 의문이 들었다. 사무 관리직에도 종류가 많은데 대면 업무의 경우 대기하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근무 시간 내내 눈썹을 휘날리며 바삐 일하는 것은 누구든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아 보이는걸? 현장을 총괄하는 관리자는 개미처럼 일하는 대신 넓고 장기적인 시야를 갖는 존재가 아닐까?
그럼에도 일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지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내가 하는 일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가짜 노동이라 부를 만한 측면은 없는지 짚어보았다.
당일 아침에야 책 읽기가 끝났고 독서 모임에 갔다. 이 모임은 발제자 없이 자유롭게 토의하는 방식이다. 구성원들은 각자 경험하고 목격해 온, 또한 강요당했던 가짜 노동의 예를 들며 흥분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문제 제기였던 셈이다. 나는 의문스러웠던 점들을 이야기하며 다른 분들의 의견을 물었다. 저자가 이후에 낸 책 《진짜 노동》까지 읽고 온 부지런한 분들 덕분에 그 내용을 소개받으며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짜 노동이란 가짜 소비, 가짜 믿음, 가짜 삶 등으로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짜 노동이 개인과 세계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무의미하게 지속되는 노동이라면 가짜 소비는 세상의 시선, 불안과 압박 때문에 습관적으로 이어 가는 소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소비의 거품을 걷어 낸다면 삶은 훨씬 가볍고 즐거워지지 않을까. 내 생각과 행동에서 무엇이 가짜인지 찾고 걸러내는 안테나를 한번 세워 보아야 할 것 같다.
어째서 독서 모임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정해진 기한 내에 책을 읽게끔 만들기 때문이라고, 모임에서 뭘 말할지 생각하면서 읽게 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둘 다 혼자 읽을 때는 얻기 어려운 효과다. 함께하는 구성원들을 점점 더 많이 알고 그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독서 모임이 없다면 대출 기한이 2주인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인터넷 서평을 올리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그럼 어째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턱없이 좁고 편향된 내 세상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한번 사는 인생을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한 권 한 권에 펼쳐진 각기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알려면 내가 아닌 비교 대상이 필요한 법 아닌가.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강물도 바뀌고 발(그리고 발로 대표되는 사람)도 바뀐다. 먹고 마시고,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모든 것이 우리를 바꾼다. 고스란히 축적되지는 않는다. 읽은 책의 내용은 빠르게 잊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 흔적은 남는다. 훗날 어느 순간 휙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그 한 권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