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올바른 지향성과 하느님과의 관계

영성과 신심

기도의 올바른 지향성과 하느님과의 관계

참된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마음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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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 안에서 다양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분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시편 34,9)

 

시편에서는 너무나 명확하게 그 방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맛을 들이라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맛보는 것이며, 눈여겨보라는 것은 나의 시선을 바꾸어 주님께로 향하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내 인생에서 주님의 활동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주님과 관계 맺는 것입니다.

 

그분과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과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지만, 참된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 계속 은총을 청할 때가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기도는 하는데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의미를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성찰 중에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어떤 지향을 가지고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있는가?’

 

이 성찰 없이 기도를 지속적으로 바치고 있다면 ‘영적 메마름’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메마름이 나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하느님께서 건네주시는 또 다른 은총의 선물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는 여정이기에 분명한 출발지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분명한 목적지도 마련됩니다. 출발지는 ‘나’라는 존재이며, 목적지는 ‘하느님’입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이 단순함을 ‘망각’하고 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는 다른 무엇이 아닌 ‘나’라는 존재와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관계성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분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 되물어봐야 합니다. 이 올바른 관계 안에는 앞서 언급했던 ‘사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일을 더없이 즐겁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기도가 부담과 의무가 아닌, 행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처럼 올바른 지향을 두고 기도하기에 앞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갈망해 보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며 관계를 맺어 보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차츰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며 기도하는 여정 가운데 나의 ‘내면의 변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 중에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나’를 변화시킵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하고도 끈기 있는 기도 

 

구약 성경 창세기 18장 16절에서 33절까지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느님’(주님)께 용서를 청하는 담화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창세 18,20-23)

 

아브라함은 그 이후에도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 마흔다섯 명의 의인을 바라봐 달라고, 더 나아가 마흔 명의 의인들을 생각해 달라고, 서른 명, 스무 명, 결국엔 의인 열 명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을 수 있다면 파멸로 가는 길에 다다르지 않도록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춰진 보물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아브라함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거기 사는 모든 사람이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를 위해 중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 안타까운 사람들을 구원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한번 청원해 본 다음, 자신에게 허락하신 아들에 대한 약속(창세 18,19)만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칫 주님을 분노케 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용기를 가지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태도와 기도를 청하는 자세를 바라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안에 어떤 지향이 감춰져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죄 중에 있는 이 백성을 자신처럼 소중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들 또한 주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어떻게든 줄다리기하며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끈질기게 청원했음에도 하느님께서 이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불만을 가졌을까요? 아브라함은 항상 청원을 새롭게 언급하기 전, 겸손한 자세의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창세 18,27)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창세 18,30)

 

그는 모든 결정과 뜻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깁니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를 바칩니다. 이 담화 안에는 기도의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원천이신 하느님, ‘하느님’과 ‘나’의 관계, 기도할 때 필요한 태도, 기도의 지향성 등 올바른 기도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청원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청하는 바가 하느님도 원하시는 바이기를, 곧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할 때는 나의 청원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일치되기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사제양성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 영성 지도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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