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바로 나의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예술

“그분이 바로 나의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사랑을 찾아서, 《나의 예수》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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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답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안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이 무렵에 한 수녀님이 내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는 질문을 하셨다. 뜻밖의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각자 자신만의 예수님이 계셔. 한번 잘 생각해봐.” 나만의 예수님이라니.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질문이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나만의 예수님은 어떤 분일지 궁금해졌다. 친구 같은 분일까? 아니면 좀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아버지 같은 분일까?

《나의 예수》 역시도 ‘나에게 예수라는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소설 《침묵》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신앙 에세이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가톨릭 신앙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어딘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있다. 마치 페르소나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의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또 같은 신앙인으로서 대체 그에게 신앙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이기에 끊임없이 이 문제에 관해 탐구했는지 궁금해졌다.

엔도 슈사쿠는 자신도 많은 신앙인들처럼 때로는 방황했고, 도망치고도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신실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신앙을 버릴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은 생애 동안만큼은 내 몸에 맞는 옷으로 고쳐 입는다는 생각으로 그리스도교를 좀 더 알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수많은 의문과 질문에 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예수’와 만나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머니가 억지로 입혀 주었던 양복인 ‘가톨릭’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맞춰 입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성경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성경을 읽어 나가는 방법을 소개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린 ‘성경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바로 엔도 슈사쿠만의 ‘모성적 하느님’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보는 성경 속 예수는 늘 고독하다. 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으나,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이들 사이에 서 고독함과 슬픔을 느낀다. 스승을 배반하고 저버린 제자들, 은돈 서른 닢에 자신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보냈으나 곧 십자가에 매달라고 욕설을 퍼붓는 군중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때로는 우리도 예수님을 저버리기도 하고, 그분의 사랑을 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이런 이들마저 사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다. 이토록 나약하고 슬픈 인간의 모든 것을 끌어안아 주는 예수. 하지만 예수의 이런 사랑은 눈에 보이는 기적을 원했던 제자들과 군중에게 외면받는다. 스승의 죽음 앞에서 겁을 먹고 도망쳤던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찾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가 남긴 ‘사랑’, 그 사랑이 결국기적이나 현실적인 도움보다 더욱 숭고하고 영원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모성애적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 엔도 슈사쿠가 찾은 ‘나의 예수’였다.

엔도 슈사쿠만의 시선으로 그린 성경 속 사건과, 예수와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울림이 있다. 또한 성경 속에 등장하는 사도들과 그 밖의 여러 인물들의 삶과 심리를 조명하여 우리가 그들에게 한층 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평소에 미사나 성경 묵상 때 듣곤 했던 성경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가슴에 한결 더 와 닿는 느낌을 받는다. 성경의 이야기가 옛날 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엔도 슈사쿠와 또 성경 속 제자들의 신앙 여정이 우리가 걷고 있는 그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도 그들처럼 때로는 방황하고, 또 그 길에서 주저앉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방황과, 고독함, 괴로움 그 끝에는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강조한다. 엔도 슈사쿠는 우리가 신앙인이 된다고 해서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방황하고 괴로워합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제 방황과 괴로움을 기억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21쪽)   

때때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들로 인하여 신앙과 멀어지고, 또 끊임없는 유혹 앞에 흔들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유혹과 나약한 모습 역시 ‘신앙’이라고 엔도 슈사쿠는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괴로움과 슬픔을 알아주시는 분이니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곁에서 동반자 같은 존재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예수님을 믿고, 또 그분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그분이 베푸신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나만의 예수님을 찾기를 소망하며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슬쩍 이 책을 건네고싶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 넘어진 나를 일으키고 내 손을 잡아 주는 분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나의 예수’와 조우하게 된 셈이니 말이다.

by.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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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영감을 주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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