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여정’이다. 이 단어에는 ‘여행의 과정이나 일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행할 때 느끼게 되는 외로움이나 시름 따위의 감정’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레커다란 가방을 메고 묵묵히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특히 ‘인생이라는 여정’, ‘삶이라는여정’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런 이미지가 눈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길에서 길을 찾다》에는 바로 이런 여행자의 땀내와 체취가 깊이 배어 있다. 이 책은 지금은 사제가 된 한 신학생이 떠났던 40일간의 무전 여행기를 그린 에세이다. 아무것도 없이,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만 믿고 무일푼으로 떠나는 무전여행이라니. 조금은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 여행의 목적을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그저 예수님의 광야 여정을 느껴 보고자 했을 뿐이라고. 언젠가 미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보내셨던 그 순간을 다룬 복음이 봉독되었을 때였다. 복음을 들으면서 문득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땅 한가운데 놓인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전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인데 괜찮으셨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예수님이 느끼셨을 불안감과 외로움, 배고픔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안락하고 평온했던 고향 나자렛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머무르면서 예수님은 무엇에 의지하며 그 시간을 버티셨을까.
《길에서 길을 찾다》에 그려진 저자의 여정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큰 꿈을 품고 호기롭게 떠났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행이 계속될수록 그들 앞에 놓인 가장 큰 고통은 고단한 여정의 피로감만은 아니었다. 배고픔, 몸 뉠 곳을 찾아 누군가에게 빌어먹고 다시 길 위에 올라야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 앞에서 저자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기로 결심한다. 40일을 광야에서 보냈던 예수님이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마침내 그 시간을 스스로를 정화하는 시간으로 거듭나도록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하느님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되었던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고통 중에 놓여 있을 때였다.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느꼈던 그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내미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이 책 안에는 40일간의 여정 중,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와 싸우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고통스러운 삶의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저자의 절절한 깨달음이 마음을 울린다.
“나는 나의 광야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분노와 징벌, 심판자 하느님을 보지는 않았다.
다만, 한없이 비참한 곳으로 떨어지려 할 때에 나를 향해 내미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꼈을 뿐.
그 사랑을 조금 느꼈을 뿐.” (38쪽)
그럼에도 이 책이 꼭 여행의 ‘짠내가 나는’ 순간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저자가 길에서 마주했던 이들에게서 받았던 따뜻한 온기와, 그들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한 순간들이 그려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스하게 젖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면식조차 없는 두 청년에게 베풀어지는 따스한 손길 덕택에 그 고단한 여정을 다시 이어 나갈 힘을 얻었음을 고백한다.
“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길 위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내게 하느님을 보여 주었다.
아직 모든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했다. ‘
하느님과 함께 걷는 길은 행복했다.’” (274-275쪽)
친구가 건넨 여섯 알의 살구로도, 또 누군가 내민 시원한 물 한 잔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 책에는 누군가 내밀어 준 따뜻하고 소박한 나눔으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에 대한 기쁨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순간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솔직한 깨달음과 단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책만이 지닌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분명이 책은 보통의 여행기와는 다르다. 수려하고 빼어난 풍경을 담은 사진도, 흥미진진한 모험담도, 또 여행의 여정을 감성 깊은 필치로 아름답게 그려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은 투박하게, 그렇지만 우직하게 자신만의 광야를 향해 걸어 나가는 저자의 여정이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그러기에 ‘길에서 길을 찾다’라는 제목처럼,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래서 나 역시도 책장을 덮은 뒤에 아픔과 고통의 순간에 그분께서늘 함께하고 계셨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또 하느님을 찾고자 갈망하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넌지시 건네고 싶다. 인생이라는 여정. 그 머나먼 길에서 자신만의 답을 마음껏 찾으며, 마침내 영원한 희망이신 주님을 발견하는 데에 이 책이 든든한 동반자로서 함께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는 이 여정이 주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앞으로 계속 걸어갈수 있는 용기도 함께 청하며.
by. 아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