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성인 중 한 명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는 평생 영적 우정을 맺은 여인이 있다. 바로 8월 11일이 축일인 글라라 성녀다.
⚬ 이름: 글라라
⚬ 활동 시기: 1194~1253년
⚬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1212년 성지 주일, 아시시의 귀족 가문 저택에서 한 여인이 밤중에 몰래 빠져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포르치운콜라 성당에 도착한 여인을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영접했고, 그 여인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수건을 쓴 후 수도복을 입고서는 제대 앞에 엎드렸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바로 글라라 성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따라
글라라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장녀이자 용모가 뛰어났던 글라라는 일찍부터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시키려는 부모의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글라라는 부모의 기대를 뒤로 한 채, 청빈한 삶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프란치스코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부모와 형제를 떠나 청빈한 수도자로 살기 위해 프란치스코 곁으로 간다.
수도 생활을 두고 가족과 일어난 갈등
프란치스코의 첫 여성 제자였던 글라라는 바스티아 근처 베네딕토 수녀원에 머물렀다. 한편 글라라의 가족은 그녀가 수도원에 간 사실을 알고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데려오려고 했으나 글라라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글라라의 동생 아녜스까지 언니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몰래 집을 나가자, 가족들은 더욱 분노했다. 그래서 장정들을 시켜 동생 아녜스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글라라의 기도에 아녜스는 몸이 무거워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 놀라운 일을 본 사람들은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했고, 결국 아녜스도 수도 생활을 하도록 허락받을 수 있었다.
글라라가 일으킨 기적
프란치스코는 글라라와 그녀를 따르는 이들에게 성 다미아노 성당을 본거지로 주었다. 이 공동체는 현재의 ‘글라라 수도회’가 되었다. 글라라는 많은 귀족 소녀들의 멘토가 되었고, 그들은 글라라의 지도 아래 모여 수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글라라는 종종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병든 이들을 치유하거나, 한 개의 빵으로 여러 수녀들의 배를 채우는 일이 일어났다. 1240년경에는 아시시에 쳐들어온 적군에게 성광을 들고 맞섰고 적군은 눈부신 성광에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1252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에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미사를 드리고 싶은 열망에 병실에서 떨어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밤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적은 1958년 비오 12세 교황이 글라라 성녀를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다. 글라라 성녀는 1253년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빛’을 의미하는 ‘글라라’의 이름처럼, 성녀의 성덕의 빛이 우리를 비추며 하느님께 인도해 주기를 바란다.
* 이 콘텐츠는 《가톨릭 성인전》 일부를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