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구사제 연피정 장소로 제가 살았던 강화의 인천신학교를 선호합니다. 신학교에 도착해 배정된 방으로 이동하던 어느 날, 2층 출입문에 붙은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기도 중입니다.”라는 큰 글씨 아래, “예수님 만나게 도와주세요.”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영성의 해’를 보내는 후배 신학생들이 사용하던 층이었나 봅니다. 방학이라 후배 신학생들은 여기 없겠지만, 그 문구를 보자마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성찰했습니다. ‘나는 다른 이가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직무 사제로 살아가며 온통 직무에만 빠져 살았습니다. 때로는 기계적이고, 때로는 제 갇힌 생각들과 닫힌 마음으로 예수님의 현존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 후 매일 저도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피정 지도 신부님께서 ‘최선’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전해 주셨던 것도 떠올렸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는 대충 살라고 초대된 자리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살라고 초대된 자리이다. 최선이란 인간으로서 혼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 바로 ‘최선’의 삶이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기념하며 복음 말씀에는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가 나옵니다. 시메온은 의롭고 독실했으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예언자였고, 한나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던 예언자였습니다. 이 두 예언자는 자신들이 할 일만 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며 도우심을 청하였기에 결국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있는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도록 서로를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일상의 삶을 정성스럽게 봉헌하면서 말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머무르기를 성령께 청합시다.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희망합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에 기뻐하며 일상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며 올바로 섬기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삶에서 자기 안에 품은 하느님을 나르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보물 같은 그분을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처럼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나르는 사람이다. 자기 안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살아가며 이 땅에서 하느님을 나르는 사람이다.”
에르메스 론키, 《마리아는 길을 떠나》, 바오로딸, 2024, 87-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