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 8,2-4ㄱ.5-6.8-10; 1코린 12,12-30; 루카 1,1-4; 4,14-21]
제1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았던 한 인물을 만납니다. 그의 이름은 에즈라로서 “주님께서 도와주신다.” 혹은 “주님은 도움이시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제이며 율법학자였던 그는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통치 시기(기원전 464-424)에 활동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에, 에즈라는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세의 율법서를 읽어 주었습니다(느헤 8,3). 에즈라가 소개하고 레위인들이 번역하고 설명해 준(느헤 8,8)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배지에서 돌아와 공동체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고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는 데 필요한 내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서 제시된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삶의 첫 자리에 두고 살았던 또 다른 인물,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에 있는 어느 한 회당에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의 일부분입니다. 루카 4,18-19은 그 내용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칙령을 반포하고, 바빌론에서 유배 중이던 이들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처절하고 비참한 바빌론 유배를 체험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했던 ‘기쁜 소식’(이사 61,1-2)이 예수님 시대의 백성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루카 4,18-19).
이로써 이사야 예언자에 의해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선포되었던 구원을 위한 약속이 예수님의 선포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선포된 구원의 약속이 나자렛 회당에 모인 이들 가운데서 성취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루카 4,21)
루카 4,18은 이사 61,1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하고 그의 메시아적 사명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수님의 사명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 곧 기쁜 소식의 선포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이들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이들로 제한하여 볼 수 없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회·정치·종교적 이유 때문에 소외된 모든 이들 모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구원의 경계 밖으로 벗어나 있기에,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목적을 이루기 위해 파견된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시온의 의로운 이들은 주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사회·경제적으로 억압받는 이들, 곧 가난한 이들, 마음이 부서진 이들, 갇힌 이들, 슬퍼하는 이들을 위한 해방을 선포하도록 선택받았습니다(이사 61,2 참조). 우리 역시 세례를 받고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되셨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우선적 사명 역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 선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봅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유대가 있다는 사실을 주저 없이 밝혀야 합니다.
결코 가난한 이들을 저버리지 맙시다.”
(《복음의 기쁨》 4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