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큰 갈등이 있었던 본당에 발령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참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큰 갈등에서 비롯된 깊은 상처와 아픔은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제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묵묵히 기다리면서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갈등을 겪는 교우들이 있었는데, 그중 어느 교우의 가족이 병을 앓다가 선종하였습니다. 저는 장례미사 때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들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장례미사를 평일미사와 분리해서 일정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장례미사 때보다도 오히려 참례자가 많았습니다. 그 교우와 갈등을 겪던 교우들이 장례미사에 참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보다, 안타깝게도 큰 병을 앓다 짧은 삶을 마감한 고인을 위해서 장례미사에 참례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한 신앙 공동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이지요. 저는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진짜 고맙고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갈등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여 준 진심 어린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신자들의 모범적인 행동이 사제로 살아가는 저에게도 깨달음이 되었고 좋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본당을 떠날 때까지도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습니다. 신자들이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준 그 고맙고 아름다운 마음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좋은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참 나약한 존재입니다. 머리로는 용서한다고 생각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노트르담 수도회 와타나베 가츠코 수녀님은 오늘 복음 말씀대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라는 말을 실천하려면 적어도 상대방의 불행을 바라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수녀님이 겪은 큰 아픔과 슬픔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저서 《사랑을 담으면 특별해집니다》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타인이나 어떤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일관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성숙한 인간이자 신앙인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인간은 상대가 보여 주는 태도와 자세를 똑같이 하지 않고,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또 조건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는 위대한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작은 일에 큰 사랑을 담는 거예요.”
우리 각자 살면서 받은 상처와 아픔에, 가장 먼저 아버지 하느님의 한없이 크신 사랑과 자비를 담고 또 담아내는 한 주간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