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민택 신부입니다.
먼저 시작 기도로 요한 1,35-39 말씀을 듣겠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 세례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가던 중 예수님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이는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질문을 다시 건네십니다. “무엇을 찾느냐?” 나는 살면서 무엇을 찾아왔고,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가요?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들입니다. 성소자나 신앙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었던 것
성경에는 ‘찾는 사람’이라는 모티브가 종종 등장합니다. 욥이 그러했고, 동방 박사들이 그러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없도록 창조되었기에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찾는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가 찾는 존재, 그리고 이미 이곳저곳에서 많은 것을 찾아다닌 존재라는 점을 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치 않는 진리 하나가 있다면 바로 우리가 찾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그들은 ‘찾는 이들’이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예수님이 찾아가신 제자들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별을 좇아 유다인의 왕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봅시다(마태 2,1-12 참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한 성탄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하느님을 찾고 자기 자신을 찾는 이들이었습니다.” 박사들이 유다인의 왕을 찾아온 길은,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가 걸어야 할 영적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께서는 찾아야 만날 수 있는 분, 약속의 하느님이심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숨어 계신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찾음으로써 진리와 사랑을 경험하기를, 당신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정한 자유 안에서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기다림, 찾는 마음, 오고 감이 있는 가운데 모든 피조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이 길을 걷기를, 자유 안에서 당신의 부름에 응답하기를, 그래서 새롭게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기다리십니다. 우리 모두가 자유의 경험을,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선해질 때 느끼는 기쁨의 경험을, 이 모든 천상의 경험을 하길 바라십니다.”
한민택, 《내 삶에 열린 하늘》, 생활성서사, 25쪽.
찾는 사람, 찾은 사람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요? 나는 무엇을 찾아 떠났으며, 무엇을 발견했나요? 나는 ‘찾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찾은’ 사람, 그래서 더는 찾지 않는 사람인가요?
찾는다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향해 개방된 인간임을 의미합니다. 찾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굽이에서 있었던 일들, 만난 사람들, 사건 사고들, 그 모든 일과 만남들이 신앙의 길과 성소의 길을 중재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과 성소를 중재한 일들은 어떤 것인가요? 거기서 나는 어떤 ‘찾는 나’를 만나고 있나요?
저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회적 성공을 꿈꾸며 일반 대학교를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본당 중고등부 교리 교사를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저를 사제 성소의 길로 조금씩 인도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금 발견하고는 합니다. 찾지 않았다면 진로를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찾음은 신학교 입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학 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학교 일이 힘겹고 무거워서 점점 쉬고 싶은 마음이 들던 그때, 때마침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유학 역시 제가 살아온 ‘찾는 삶’의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교회에서, 새로운 환경과 관계 속에서 저는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특히 ‘자유’를 찾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목말라 했습니다. 한국에서 양성을 받는 동안 제가 얼마나 자유가 제한된 사회에 속해 있었는지 볼 수 있었고, 진정한 자유를 향한 길을 주님께서 열어 주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영성 지도를 해 주신 부스케 신부님께서 어느 날 ‘자유로울 의무’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학교에서 의무란 없다고 말씀하시며, 단 하나의 의무가 있다면 자유로울 의무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자유가 어떤 것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제약도 없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것만을 하는 자유가 아닌,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다른 제약 없이 온전히 나 자신의 응답을 드릴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그 자유는 하느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계속되는, 계속되어야 할 여정
오랜 시간의 식별 끝에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걷지 않으련?” 그리고 저는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찾았던 대상은 ‘무엇’이 아닌 ‘누군가’였고, 저를 사랑하시고 저와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이루고자 하시며 저를 불러 주시고 파견하시는 분, 곧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의 ‘찾는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파견된 존재로 살면서, 이제는 제게 맡겨진 이들과 함께 찾는 길을 걸으며 동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찾는 여정은 늘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 제게 주어진 소임 등 다양한 상황 안에서 말이죠.
찾기를 그친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기를 그만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앞길을 열어 주시며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당신께 응답하도록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과의 우정은 깊어만 갑니다.
이 피정을 통해 각자 찾는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곳, 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거기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 만남들, 일들과 관계들을 들여다봅시다.
우리가 찾아 헤맨 것
찾는 여정에서 성경 속 인물들을 만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그들은 누구를 찾고 있었을까요? 그들 안에 새겨진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사랑, 새로운 출발을 가능케 하시는 사랑, 우리의 삶이 성공하도록, 희망적으로 마무리되도록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
야곱의 우물가에 나타난 사마리아 여인을 떠올려 봅니다(요한 4,1-42 참조). 사마리아 여인은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찾지 못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요한 8,1-11 참조)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간음한 여인이 만난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셨을까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라고 하시며,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자기 스스로를 먼저 향하도록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단죄가 아닌 용서로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신 분이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죄보다 우리가 더 소중하다고 하셨습니다. 단죄보다 축복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라고 하신 분이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고, 진정한 사랑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선사했고, 그녀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은 어떤가요? 혹시 잘못 살아온 삶,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사람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든 실패와 위기는 계시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들고 가야 할 길을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단지 방황한 것이 아니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아가 3,4)
이미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받은 무한하고 충만한 사랑에 눈을 뜰 수 있을 때 우리가 찾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랑은 속이지 않고, 숨기지 않고, 남기지 않고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사랑, 이미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찾고 있던 우리를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그 찬란한 추억 속으로, 그 힘찬 맥박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주님께서 다시 시작하자고 하십니다. 하느님을 찾고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을 계속 걸어가자고 하십니다. 실패란 없습니다. 방황도 없습니다. 찾는 중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습니다. 지금은 공감과 격려와 칭찬이 필요할 때입니다.
혹시 과거에 그릇된 사랑이나 잘못된 만남이 있었다고 생각된다면, 그때의 나 자신과 화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계획 안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는 그 어떤 것도 우연하거나 헛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악으로부터도 선을 끌어내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합니다.
그분을 닮는 길
저의 프랑스 유학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순수했던,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의 제가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발견했습니다. 바로 저의 님과 교회, 저의 하느님, 그리고 양 떼를 말입니다. 지금도 저의 ‘찾음’은 계속됩니다. 오늘도 저는 신학교에서, 여러 성당과 고해실에서, 여러 만남 안에서 찾는 사람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찾음은 늘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르심의 매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 안에서 늘 새로운 길을 선사하십니다. 찾는 마음, 가난한 마음……. 그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당신은 무얼 찾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고 있나요? 우리가 찾는 것이 ‘누군가’이며 그 누군가와 함께하는 ‘친교’임을 알아차렸나요.
마지막 한 가지, 예수님께서도 찾는 분이셨음을 잊지 맙시다. 무엇을 찾으셨을까요? 바로 아버지 하느님, 그분의 뜻, 그분의 바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을 찾아오셨고, 사람을 위해 온 삶을 바치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찾아가며 우리는 그분을 닮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찾는 기쁨, 찾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함께 이 길을 걷도록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함께 묵상해요! 🙏
·요한 1,35-51. 4,1-42. 8,1-11
위 구절을 읽고, 성경에 나오는 이들과 함께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찾는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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