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 시리즈의 아티클로 ‘필립보는 예수님께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에서 이어집니다.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잖아요.”
“잘 알죠.”
지저귀는 새소리와 짐을 나르는 짐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뒤엉켜 창틈 사이로 들어오고 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는 필립보의 얼굴은 새삼 진중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젖어 보였다.
“나타나엘은 제가 물고기를 납품하다 시장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구원자를 늘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는 자기 속내를 꾸밈없이 털어놓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시장에 갈 때면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서 항상 ‘우리는 언제쯤 해방될까’ 하는 한탄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어요. 로마에서 세금을 너무 많이 걷어가는 행태도 그의 피를 끓게 하는 데 한몫 했겠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더 순수한 종교적 열망이 있었다고 확신해요. 정말 그는 순수한 사람이거든요.
어느 날은 그가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다고도 했어요. 야곱이 에사우를 다시 만나기 전 돌베개에 누워 꿈꾼 그 장면을 보았다는 거예요(창세 28,12). 다른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저는 그 친구에게만큼은 무엇인가 진심이 느껴졌어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날 제가 그분을 만났어요. 그래서 제가 그분을 처음 만난 순간, 혹시나 그가 평소에 기다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더군요.”
필립보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자렛 출신이라는 점이 걸렸어요. 저는 사람의 출신이 무슨 대수냐 하는 주의인데, 나타나엘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사실 나자렛은 우리 경전에 특별하게 언급되지 않은 곳인데, 그때 제가 왜 굳이 그분을 ‘나자렛 출신이자 요셉의 아들’이라고 그에게 이야기했을까 싶어요. 그저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한 분’으로만 소개했으면 그가 그분을 받아들이기 더 쉬웠을 텐데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그분의 매력이 느껴졌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확신이 아직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나타나엘에게 무언가 확인을 받고 싶었던 거죠.”
“확인…….”
“네, 저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기질이 있어요.”
“당신이 그리스인들을 먼저 안드레아에게 데려간 것도 그 이유였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회당에 데려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저 회당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졌는데, 친구들도 그 느낌을 갖기를 원했어요. 와서 직접 보고 느껴 보라고요.
아, 어쩌면 그 느낌이 친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안드레아가 그런 친구 중 하나였죠. 그는 기쁘게 제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필립보의 말을 듣고, 나는 무언가 머릿속의 실타래가 풀리는 듯하였다.
“안드레아는 저와 달리 정말로 머리가 좋은 친구예요. 그리스어도 저보다 더 잘하고요. 저는 직감으로 움직이는 편인데, 그는 저보다 더 상황을 침착하게 바라볼 줄 알아요.
그래서 그리스인들을 그분께 데려가기 전, 그 친구의 조언을 듣고자 했어요. 그는 예수님께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이 먹을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해하는 저를 보면서, 제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어요.”
“그 뒤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할 일을 일으키셨죠.”
“네 맞아요.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그 작은 식량으로 배불리 먹이셨어요.”
“그때 어떤 마음이 들던가요?”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그분은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분이 맞다는 생각이 더 굳어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에서야 왜 그렇게 확신하지 못했을지 돌아보기라도 하지만, 그때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말을 마친 필립보는 창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넌지시 들어오는 빛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그분의 도움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앞을 보게 된 소경이 주님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그분에게 믿음을 고백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라도 저는 확신해야 했어요. 아니, 사실 그때도 늦지 않았어요. 몇 달이 지난 뒤 토마스가 그분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까지 보았죠.
저는 토마스가 너무 부럽습니다. 그분께 직접 그런 놀라운 고백을 했다니……. 그때까지 저는 그분을 앞에 두고도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철없는 청을 드렸잖아요.
몇몇 사람들과 그리스인들을 그분께 가까이 데려갔을지는 몰라도, 정작 저 자신은 그분을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잠시 침묵 뒤 그는 말을 이었다.
“사람을 곁에서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이 떠오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에요. 우리는 가족과 친구를 그렇게 떠나보냈는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창에서 시선을 거둔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분께서 다시 제 앞에 오신다면 당신을 못 뵈어서 죄송했다고, 저는 당신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도 다 듣고 계실 거예요.”
필립보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제는 그분께 말씀드리지 못했던 그 확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전 다락방에서 성령이 우리 모두에게 불어오셨을 때(사도 2,1-12), 그분께서 만찬 때에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 14,26)
“저는 그때 그분 안에 계신 아버지를 뵙지 못했지만, 이젠 아버지께서 직접 보내신 성령으로 모든 일을 해 나갈 거예요. 너무 기쁨에 차서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예요.”
“이제는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실 수 있게 되었군요.”
“그럼요. 그분과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예루살렘 축제 때 그리스인들이 저에게 먼저 온 것은 행운이었어요.
아시다시피 성령 강림 이후로, 저는 그리스어를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더 많은 그리스인을 만날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만난 그분 안에 계신 아버지를 고백할 생각이에요.
제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성령께서는 저와 함께 계실 거예요, 아니, 먼저 그곳에 가서 자리를 마련하실 겁니다."
그 후 몇 주가 지나자, 필립보는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밝은 표정으로 소아시아 지역의 히에라폴리스로 향했다.
훗날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그는 그곳에서 순교할 때까지, 평생 기쁨에 가득 차 수많은 그리스인에게 주님을 직접 뵈었노라고 선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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