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는 왜 서로를 탓했을까?

가톨릭 예술

아담과 하와는 왜 서로를 탓했을까?

티치아노와 루벤스의 작품에서 읽는 인간의 모습

2026.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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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 요약

 

1. 티치아노와 루벤스의 <아담과 하와>는 인물의 시선과 상징물을 통해 죄 앞에서의 인간 태도를 다르게 보여 줍니다.

 

2. 두 작품은 죄를 인정하기보다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3. 이 글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번 달에는 평소보다 왜 이리 바쁜 일정이 많았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문자 수신 벨이 울렸다.

 

이번 원고는 언제쯤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아차! 이 원고를 안 썼네!” 하는 생각과 함께 여러 가지 핑계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일만 없었다면”, “이번 달은 왜 이렇게 바쁜 거야?”, “맨날 원고 늦게 보내는데 이번에도 그럴까?” 하는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그런데 마침 강의가 있어 신자분들께 성화 속 가르침을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그중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다. 내가 강의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부끄러워 정신이 없었다. 남 탓을 하려 하고, 다른 이유를 붙여 거짓말을 하려는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두 성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자 한다.

 


 

아담과 하와

 티치아노, 1550년경,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티치아노가 그린 아담과 하와

 

티치아노1550년경 <아담과 하와>를 그렸다. 그리고 약 반세기 후, 루벤스는 이 작품을 모작하며 바로크 특유의 색채와 화려함을 덧입힌 또 하나의 <아담과 하와>를 완성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현재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작품을 나란히 보며,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티치아노의 작품은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실로 단순하다. 그러나 두 그림에서 한 발짝 물러나 감상하면, 그 차이는 너무나도 뚜렷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색감을 이야기하고, 이어 인체의 곡선미를 언급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틀린 그림 찾기가 시작된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흥미로운 감상의 일부가 된다.

 

시선 처리에서도 두 화가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아담은 뱀과 시선을 맞추고 있으며, 하와에게 손을 내밀고 있으면서도 한 발짝 물러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개입하지는 않는 태도다.

 

아담과 하와

루벤스, 1628년경,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반대로 루벤스의 작품에서 아담의 시선은 하와를 향하고, 이는 하와의 행동을 말리는 듯 보이지만, 손을 살짝 하와의 어깨에 대고 있는 소극적 태도를 통해 결국 아담이 하와의 선택을 뒤따를 것임을 암시한다.

 

두 그림에는 아담과 하와, , 그리고 하와의 발밑에 놓인 여우가 등장한다. 그리고 하와의 왼쪽에는 붉은 꽃이 보인다. 그러나 루벤스의 작품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바로 아담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앵무새다. 그렇다면 루벤스가 새롭게 추가한 앵무새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반적으로 앵무새는 따라 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여우는 주로 간사함’, ‘배신’, ‘속임수를 상징하며, 이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배신으로 인한 원죄의 시작을 알린다. 또한 하와의 왼쪽에 있는 화려한 붉은 꽃헛됨을 의미한다. 이는 하느님처럼 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간사함과 배신 그리고 그 욕망이 결국 헛된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제 탓입니다.”

 

몇 가지 차이가 있지만, 성화는 모두 창세기 3장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죄에 대한 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찾으시자, 아담은 자신이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열매를 먹게 된 연유에 대해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하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어서 하와는 뱀이 꾀어서 먹었다며 그 책임을 뱀에게로 돌린다. “저의 잘못입니다.”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자신은 먹지 않으려고 했고, 죄를 짓지 않으려 했지만, 저 사람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서로 탓을 돌린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제 탓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남에게 죄를 떠넘기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평소 우리는 마치 아담과 하와처럼 저 사람 때문에, 저는 안 그러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라며 서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내 안에는 그들이 발가벗은 것을 하느님께서 아시듯, 창피함과 죄책감으로 가득하다. 스스로 반성하고 내 잘못입니다.” 하고 주님께 고백하는 모습이 그분께서 진정 바라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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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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