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세례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

가톨릭 예술

예수님의 세례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로 묵상하는 신앙의 시작

2026.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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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 요약

 

1.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사명을 시작하는 결단의 순간입니다.

2.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령 강림과 예수님의 내적 의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3. 이 성화는 우리의 세례 또한 새롭게 태어나 복음을 살아가겠다는 약속임을 일깨웁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1월은 나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에 마음이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제는 새해가 된다는 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부담감과 함께 벌써 일 년이 지나갔네…….” 하는 아쉬움과 불안함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과 설렘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시작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늦은 나이에 천주교에 입교했다. 중학생이었으니 다른 친구들보다는 꽤 늦은 때였다. 돌이켜보면 지겹던 교리 교육을 마치고 세례를 받을 때, 유일하게 생각나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중학생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되거나 마음에 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새로움과 불안함이었다.

 

오늘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를 이 화가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이 작품은 1440년경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이다. 15세기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렸지만, 그중 이 작품이 철저한 수학적 규칙과 원근법이 가장 정교하게 적용된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구성의 균형성, 단순한 형태 그리고 빛과 부드러운 색채를 통해 작품에 경건한 분위기를 불어 넣었다. 복음서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마태 3,13-17; 마르 1,9-11; 루카 3,21-22 참조). 마태오 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태 3,16)라고 세례의 순간을 전한다.

 

이 성화는 본래 산세폴크로의 한 수도원에서 주문한 것이었지만, 나중에 산세폴크로 대성당에서 다시 발견되었고 지금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자연스럽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수학적 규칙에 의해 구성되었고, 세례자 요한이 붓는 물이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순간을 정확하지만 평온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위쪽의 둥근 부분은 하늘이고 아래는 땅을 상징한다. 반원의 중심에는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사각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배꼽이 위치한다. 이는 그가 화가이자 수학자였기에 가능했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엮어 그림의 다양한 요소에 심어 놓았다. 화가는 성경 속 사건을 자신이 사는 현재로 옮겨 왔다.

 

화면 중심에 서 계신 예수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셔야 했지만,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산세폴크로를 배경으로 테베레강에서 세례를 받는 모습으로 그렸다. 하지만 그 본질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요르단 강가로 이해해야 한다.

 

저 뒤편 예수님과 천사들 사이에 조그맣게 보이는 도시는 예루살렘을 떠올리게 하는, 심지어 호두나무를 그려 넣어 자신의 고향이 설립된 전설과 연결시킨다. 오른편에 도시로 향하는 인물들은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쪽에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는 이와 연결하여 작품의 시대적 특성상 그리스 정교회의 고위 인사들로 정교회와 로마 교회 간의 화해 협상과 관련된 역사적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비둘기의 날개는 예수님께 내리는 성령의 금빛 줄기, 요한이 붓는 물줄기, 예수님의 가지런히 모은 두 손, 그리고 배꼽에 이르기까지의 선과 완벽한 수직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세례 그림에서는 성령의 비둘기 위에 성부를 상징하는 손이나 모습을 그리지만 이 그림에서는 천사들로 대치되어 있다.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이 성령의 임재를 향하고 있다. 이 그림은 강물에 비친 풍경의 굴절을 보여 주는 최초의 그림으로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요르단강을 살펴보면 지나가는 사람, 뒷산,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백미는 무엇보다 성령을 온전히 보여 주기 위한 피에로의 놀라운 빛 처리다. 그림에서 가장 밝은 흰색의 비둘기는 마치 강력한 플래시가 터진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예수님의 피부는 세례와 함께 성령께서 함께하시어 죄의 씻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보다 더 밝게 묘사되었다. 예수님 옆에 있는 나무 기둥은 다른 나무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피부색과 비슷한 색으로 그려 그분 육체의 차가움과 결연함을 드러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분의 마음가짐을 색채적 비유로 드러낸 것이다.

 


 

의지가 담긴 예수님의 표정

 

예수님의 표정은 어떠한가? 그분은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근엄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당신에게 닥칠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그분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의지는 단지 나무만이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땅에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심을 의미하듯 땅에 서 있다. 다른 인물과 달리, 세례자 요한의 한 발은 대리석과 같은 곳에, 다른 발은 예수님과 같은 땅에 딛고 있다.

 

성화에서 예수님 왼편에 있는 두 그루 나무의 풍성한 잎은 앞으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실 풍요로운 결실을 의미한다. 반대로 먼 곳의 메마른 나무들이나 여러 곳에 잘려 나간 나무들은 세례를 거부하거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의 운명을 암시한다. 화가는 나무뿐 아니라, 예수님 주변에 다양한 식물들을 그려 넣어 생명의 시작이자 창조주의 창조의 시작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 곁에 있는 세 명의 천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 명은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을, 중앙의 천사는 순교의 승리를 의미하는 장미 화관을 두르고 있으며, 마지막 천사는 세 개의 진주로 된 머리띠를 통해 고귀함과 동시에 진주의 깨지기 쉬운 특성으로 죽음을 상징한다. 이는 천사의 날개가 지닌 세 가지 색과 더불어 예수님의 수난과 승리를 함께 드러낸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존재로 세 명의 천사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천사들의 표정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걱정과 근심, 그리고 아픔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부 아버지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분의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의 세례 또한 하느님의 말씀의 순명과 함께 복음 선포라는 중대한 임무를 실천하겠다는 선서이자 약속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늘 살펴본 성화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화가 자신의 시대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다. 주님의 오심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임을 이 성화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

 

또한 예수님의 세례가 우리와 동시에 연관된 사건이라면 우리의 세례 또한 그분과 함께하겠다는 시작의 표현이자 결연함의 증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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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문화유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유산의 보전과 교회 예술의 진흥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 예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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