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표를 읽는 영성: 구티에레즈의 해방 영성

신학 칼럼

시대의 징표를 읽는 영성: 구티에레즈의 해방 영성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과 ‘사회 참여적 영성’

2026.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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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종종 신앙과 사회를 분리한 채 살아간다. 개인이 바르게 살면 충분하다고 믿으며, 공동체의 고통에는 거리를 둔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페루의 신학자 구티에레즈는 사회의 구조적 불의 안에서 신앙의 책임을 묻는다. 그의 시대의 징표 읽기는 영성을 개인의 내면에 가두지 않는다. 이 글은 구티에레즈의 영성을 통해 사회 안에서 살아 있는 신앙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어른이 된 뒤에도 꽤 오랫동안 사회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반성할 줄 몰랐다. 우리 사회가 어떤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삶이 우선이었기에, 사회·정치·경제 문제에 무관심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단 사회 영역만이 아니라, 윤리·도덕·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사건 앞에서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학우들의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고, 때로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듯 보여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다. 세상이 어떠하든 나 개인은 도덕적이고 바르게 살 수 있다고 믿어왔고, 그 생각은 나와 세상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사회는 개인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개인의 의식은 그가 속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는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사회의 부조리함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모두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사회의식

 

개인과 공동체가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을 자각하는 것을 사회의식이라 부른다. 사회의식이 성숙할수록, 우리는 더욱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를 위한 봉사에 기꺼이 헌신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와 개인의 관계는 단지 사회·정치만이 아니라, 문화, 윤리·도덕, 그리고 그 사회가 지켜온 전통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개인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욱 인간적인 사회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사회와 문화, 인간적인 관계 안에서만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을 넘어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인간의 성숙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자기 중심적 경향에서 벗어나 타인 중심적 사람이 되어 갈 때, 비로소 성숙해진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오직 만 중요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가 중요하다. 공동체, 다른 사람의 삶, 미래 세대는 중요하지 않고 결국 자기만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반면, 성숙한 사람은 공동체와 타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공동체의 선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다. 이러한 모습은 성숙한 사람에 대한 기준이 된다.

 

그는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공동체를 희생시키는가?

 


 

교회의 성숙한 사회의식을 요구하는 구티에레즈의 영성

 

점점 개인화되고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 가는 이 세대에 페루의 신학자 구티에레즈의 영성이 주는 메시지는 크다. 그의 영성은 교회에 성숙한 사회의식을 요구한다. 그는 개인의 삶에 미치는 사회의 영향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영향이 사회·정치적 영역을 넘어 영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각 개인의 영적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 주목하며, 사회적 회개와 변혁을 교회의 영적 과제로 인식했다.

 

구티에레즈는 자신의 저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물에서 마신다》에서 당시 교회에 주류를 이루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개인주의적 특성을 비판한다. 개인주의적 영성은 영성 생활을 오직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생활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개인은 자기 안으로 깊이 파고들게 되면서, 공동체적 삶은 형식적이고 외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사랑의 실천적 활동은 축소된다. 결국 개인주의적 영성은 세상과 단절되는 도피적 영성으로 귀결되었다.

 


 

구티에레즈가 말하는 사회 참여적 영성

 

구티에레즈는 공동체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영성을 제시한다. 그는 역사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시대의 징표로 여기고, 하느님께서 이 시대의 징표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20세기 중반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타난 시대의 징표는 가난한 이들의 등장이었다.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있었고, 가난한 이들은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가난한 이들은 불의하고 모순된 사회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 해방 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구티에레즈는 이 징표 안에서 인간 존엄성과 인권이 확장되며 정의와 공정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뜻을 읽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사회적운동에 참여하여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운동은 하느님의 뜻을 읽고 이를 실천하는 영적인 활동이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 정의를 이루려는 노력에 참여하면서 깊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티에레즈의 해방 영성이며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다.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간의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요구하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영성이다.

 

개인과 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하면, 한 개인이 불의한 사회 안에서 영적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불의한 구조를 만들어 유지하고 거기에서 이득을 취하는 악한 이들을 차치하더라도, 불의한 구조를 만드는 데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 구조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악의 상황에 침묵하며 이 불의가 더 공고해지는데 일조하는 이들, 불의인 것을 알면서도 번거로움과 귀찮음 때문에 침묵과 방관으로 악을 용인하는 이들, 이러한 상황에 무관심한 이들 모두 영적인 의로움에서 벗어나 있다. 진정하고 온전한 회개를 위해서 개인의 회개는 당연히 전제되지만, 사회적 회개 역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는 세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음의 가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교회는 더욱 교회다워질 수 있다. 반면에 세속화된 세상 안에서 교회는 더욱 세속적 가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사회를 복음화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이 두려워 사회와 거리를 둘수록 교회는 더욱 세속화되고 정치적일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참여는 사실 교회가 영적인 면모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다.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의 실천은 교회가 자신 안에 머물며 만족하는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성숙함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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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그 깨달음을 통해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따뜻하게 섬기는 사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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