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과 함께 트위스트> 시리즈의 아티클로, 이 글은 '트로트로 복음을 전하는 중입니다.'에서 이어집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나에게 두 가지의 큰 울림을 주셨다.
첫 번째.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는 선한 영향력
첫 번째 울림은 막국수 가게에서 있던 일이다. 교황님께서 방한하실 당시 나는 수원교구 대리구청 사회복음화국 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시설장 회의를 마치고 시설장님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평소에 자주 가던 막국수 가게에 갔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위해 계산대로 갔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사장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시면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시는데 많이 바쁘시죠?”
사실 교황님께서 오신다고 내가 바쁠 일은 없었다. 교황님 방한을 준비하는 주최 측은 바쁘겠지만, 대리구청에 있던 나는 딱히 바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예의상 “아, 예. 뭐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사장님은 당신도 교황님의 방문에 가슴이 설레고 직접 그분을 뵙고 싶지만, 여건이 좋지 않아 가지 못하신다며 너무 속상해하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봉투를 건네셨다. 돈 봉투였다.
“이게 뭔가요?”
사장님이 건넨 봉투에 당황스러워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신부님 별거 아니에요. 교황님 방문으로 준비할 것도 많으신데, 요긴하게 쓰시면 좋겠어요.”
이 봉투를 정말 받아도 되는 걸까,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산대 앞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사장님은 다시 한번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시며 내 손에 봉투를 쥐어 주셨다. 당황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사장님께 어느 성당에 다니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저는 성당에 다니지 않아요. 저는 불자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불교 신자라니. 봉투의 당혹감을 넘어선 또 다른 당혹감이 몰려왔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불교 신자가 다른 종교의 수장인 교황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과 함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셨다니. 교황님의 위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해서 드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사장님이 주셨던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봉투 안에는 1백만 원이라는 큰 돈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돈은 내 돈이 아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미혼모 시설장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다. 의논 드릴 일이 있으니 시간 되실 때 커피 한 잔 마시자고 말씀드렸다. 수녀님을 만나서 교황님 덕분에 돈이 조금 생겼는데 필요한 데 쓰시면 좋겠다며 봉투를 드렸다. 수녀님은 깜짝 놀라면서 시설에 급하게 쓰일 돈이 필요했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교황님 덕분에 돈도 얻고, 사람도 얻고, 좋은 일 해서 인심도 얻고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었다. 교황님 효과, 프란치스코 효과를 톡톡히 맛본 것이다. 교황님께서 주신 첫 번째 울림은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은 종교적인 거리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사소함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
두 번째 울림은 교황님의 가방이었다. 교황님의 방한 행보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나는 교황님께서 당신의 가방을 들어주려고 하는 수행 신부님의 손길을 정중히 사양하고, 직접 당신의 가방을 드시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아. 내 가방은 내가 들어야 하는구나!”
교황님께서 당신 가방을 직접 드시던 모습은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다. 그분의 인생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억지스러운 감동을 주기 위해 겸손한 척, 잘 어울리는 척, 다른 사람과 다른 척 다른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 ‘가방을 직접 드는 모습’을 통해 보여 주신 것은, 내 몫은 스스로 감당하는 인간의 진솔한 단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 〈복음의 기쁨〉 7항
나는 교황님이라는 한 사람과 그분께서 보여 주셨던 한 사건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의 위력을 보았다. 또한 내 가방은 내가 직접 들어야 한다는 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발현되는 사소함 속에서는 한 인간이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드러나는 것 같다.
유독 오늘따라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한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혹시 그 반대는 아닐까. 만약 내가 내 몫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다면, 나도 교황님을 닮아 갈 수 있을까. 갑자기 밀려 있는 설거지와 빨래가 보인다. 서둘러 끝내야겠다.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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