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사람, 선을 지우시는 하느님

성경 이야기

선을 긋는 사람, 선을 지우시는 하느님

연중 제20주일│차별의 경계를 넘어 하느님 나라에 닿은 믿음

2026. 08. 15
읽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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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나는 무의식중에 사람을 구분하며 선을 긋고 있지는 않나요?
  • 하느님께서는 지금 내 안에서 어떤 경계를 허물기를 바라실까요?
  •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사람의 기준일까요,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일까요?

 


 

예수님의 침묵, 믿음을 깨우다

 

오늘 복음에서 이방 지역의 가나안 여자는 마귀에 시달리는 딸을 위해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그 여자를 돌려보낼 것을 제안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 15,24)

 

뜸을 들이신 것치곤 예수님답지 않은 낯설고 쌀쌀맞은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여인은 매달렸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마태 15,2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더욱 가혹하게 시험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다행히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놀라운 믿음을 이끌어 내셨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부스러기 은총이라도 붙잡으려는 여인의 믿음은 그야말로 절박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제야 예수님다운 답을 하시며 여인을 인정하셨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예수님께서는 이방 여인이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잠시 뜸을 들이시고 시험하신 것은 그 믿음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1독서의 말씀처럼 이방인들도 주님의 거룩한 산으로 이끄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거룩함이 권력이 될 때

 

이스라엘 사회를 지탱하고 거룩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율법은 사실 구분의 법이었다.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 축복과 저주, 성聖과 속俗, 정결과 부정. 이 모든 것을 구분했다. 이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성聖과 정결은 축복으로 여겨졌고 이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생겼다.

 

그에 반해 이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과 이방인, 그리고 속되고 부정한 사람들에게 율법은 차별의 근거가 되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떨어져 지내면서 스스로 부정함을 인정해야 했다. 율법으로 성성聖性을 유지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이들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권력을 움켜쥐고 구분하고 차별하여 우월감과 안락을 누렸다.

 


 

내가 그은 선, 하느님께서도 그으셨을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은 무의미해졌다. 전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최근 이스라엘의 작태를 보면 반드시 그래야 할 것도 같다. 여하튼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은 그 무엇이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만 전해진다. 유다인들이 제1독자였던 마태오 공동체와 이방인들이 제1독자였던 마르코 공동체에 이 여인의 이야기는 각각 경고와 은총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선 긋기는 사라져야 할 악이다. 심각한 분열을 초래하는 이런 선 긋기는 정말 한심한 행동이다. 가진 것, 학력, 출신, 사는 동네, 외국인, 탈북민, 나라, 정치적 성향, 심지어 성별까지. 사람을 구분하고 나누는 모습은 이미 너무 다양하다.

 

사람을 구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기웃거리지 말자. 인간이 만든 기준으로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이 좌우되지 않는다. 차별 없고 구분 없는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것이 욕심을 좇아 차별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무색하게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누릴지 모를 얄팍한 우월감과 그렇게 누리는 안락과 평화는 하느님 앞에서 반드시 부끄러움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기준

 

이제 우리의 기준을 하느님의 기준으로 바꾸어야 한다. 하느님의 기준이란 사랑과 무관심, 믿음과 불신, 희망과 절망, 나눔과 이기심, 연대와 독선, 일치와 분열, 평화와 다툼, 정의와 불의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애매하게 줄타기해서는 안 되고, 예민하게 분별해야 한다. 가나안 여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선 긋기를 멈추는 동시에 하느님의 기준을 잘 알아차리라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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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현재 의정부교구 성소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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