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을 만난 이들: 요한 복음 속 이야기> 시리즈의 아티클로, 이 글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두려움은 무엇일까?”에서 이어지는 에필로그입니다.
“니코데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어서 그분을 모시세.”
“미안하네.”
니코데모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깊은 우수에 잠겨 있었다. 본래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그는 말보다 눈빛을 통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리 도착해 나를 기다렸던 그는 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갈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나는 그를 재촉했다.
“서두르세. 시간이 없네.”
“알겠네.”
“종들은 어디 있나?”
“안 그래도 양해를 구하고 싶네. 종들이 옷을 얇게 입고 왔기에 여관에 잠시 보냈는데, 다시 부르기가 망설여지네. 나도 이런 추위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
“이해했네. 그렇게 하세. 불러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터이니.”
니코데모는 항상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종을 부리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이가 없을 텐데, 자기 막내 형제처럼 대하고는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말 못할 부러움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렸고 의원 기수도 낮았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그를 벗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후임자로만 여기던 그가 나의 벗처럼 생각된 것은, 그 역시 남몰래 예수님을 찾아간 적이 있음을 내게 털어놓은 뒤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는 벗이 되었다.
“자네 무슨 고민 있나?”
“…….”
“말을 해 보게. 눈빛이 말이 아니구먼.”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그게?”
“아, 아닙니다.”
나는 그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며칠 동안 그는 최고 의회에서 넋이 나간 눈빛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나는 어려운 점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그를 재촉했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니코데모는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재산과 지위에 욕심이 없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율법 의무에 묵묵히 충실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할 줄 몰랐고, 모든 이들을 원만하게 대하려 애썼기에 그와 갈등을 겪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미움받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보다 자리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욕심 없는 그를 보며 나는 늘 마음 한편에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그에게서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까. 사실 나는 최고의 자리에 대한 열망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누군가 나를 권력욕과 야심에 사로잡힌 이라 비난하더라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이는 단지 높은 자리에서 인사받는 데 혈안이 된 탐욕가의 야망은 아니었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권력에서 나온다. 폭군이 횡포를 부린다면 우리는 그저 착한 마음으로 순명하며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 더욱 유능한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우리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을 업신여기고, 하늘에 닿을 듯 콧대를 들고 다니는 저 카야파의 자리를 빼앗지 못한다면 우리 최고 의회는 사람들의 선망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 자리에 올라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리라. 그리고 후회 없이 일한 뒤, 훗날 존경과 찬사 속에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리라. 그래서 나는 거룩한 장례를 위한 무덤까지 멋진 정원 근처에 미리 마련해 놓았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오로지 능력과 학식으로 대사제가 되어 하느님을 믿는 우리 공동체를 변혁시키겠다는 포부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밤낮없이 공부했고, 성적은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흠 잡힐 일을 한 적도 없고, 오직 능력과 평판으로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쉼 없이 고민하고 투쟁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했다. 대사제 카야파와 그의 장인 한나스의 유착 관계는 누구도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지난 선거에서 나는 그와 같은 표를 얻었지만, 한나스는 자신의 사위인 카야파를 대사제로 앉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카야파와 한나스가 나자렛에서 온 한 예언자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엿들었다.
“자네, 나자렛에서 온 예언자라고 불리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는가?”
“아, 네. 요즘 이곳저곳이 소란스럽더군요.”
“그가 표징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내가 듣기엔 세리와 죄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더군.”
“그 저주받은 이들을 규합하고 있다고요? 하. 이제 좀 평온하다 싶더니, 또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나는 호기심으로 그분을 찾아갔다. 이 두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 탓일까. 그들이 이토록 염려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꼭 만나고 싶었고, 그분에게는 분명 확실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료 의원들로부터 그분이 병든 이를 치유하고, 마귀 들린 이들을 해방시키며, 죽은 사람까지 살려 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그분을 찾아뵙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의 표징이라면, 율법과 예언서에 예고된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회의가 열리지 않는 날을 골라서 홀로 그분을 찾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둘러싼 채 가르침을 듣고 있었는데, 내 예상과 전혀 다른 그분의 가르침에 나는 많이 놀랐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5.37)
대체 무슨 말일까. 주님께서 표징을 행할 능력을 주셨다면,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섬길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우리 영토를 짓밟은 로마 제국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의 말씀은 함부로 밀쳐 낼 수가 없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마음을 추스르며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성전에서 그분이 환전상들을 쫓아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분을 미워하던 동료들은 경비병을 보내 그분을 붙잡으려 했으나,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분노에 사로잡힌 동료들은 격한 말을 쏟아 냈다. 나는 그분이 동료들에게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로 각인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직접 뵌 그분의 모습과 동료들이 말하는 그분은 너무나도 달랐다.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지만, 두려움에 입을 열지 못했다. 다음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한마디라도 잘못 꺼냈다가 모든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 망설이던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니코데모가 입을 연 것이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늘 침묵하던 그가 분노에 찬 동료들 앞에서 그분을 변호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가 지닌 힘이 야망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선거를 두려워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결코 그와 같은 최고 의회 의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세상 권력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 그분과, 묵묵히 그분을 변호하던 니코데모의 모습은 계속해서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좇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그분처럼 당당하지 못할까? 그래, 나는 대사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침묵하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춘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밤에 긴급 총회가 소집되었다. 그분께서 최고 의회로 압송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회당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분은 이곳저곳 멍이 든 초췌한 모습으로 군중 가운데 둘러싸여 계셨다. 처음 뵈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은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했어요.”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세운다는 말도 했습니다.”
“아니오, 더 심한 말을 했소!”
앞뒤가 맞지 않는 증언들이 쏟아졌지만, 대사제 의자에 앉은 카야파와 한나스는 이러한 모순마저 즐기는 듯 보였다. 나는 본능적인 모멸감을 느끼며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니코데모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연실색하고 있었다. 예전에 동료들 앞에서 홀로 그분을 변호하던 그의 모습, 그 앞에서 망설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착한 니코데모에게 이 일을 또 맡길 수 없었다. 두 번이나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 차례다.
거짓 증언을 하는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나는 카야파와 한나스 앞에 섰다. 내가 자신들에게 의견을 보탤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나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이 회합은 불법이오!”

순간 얼굴이 굳어 버린 그들 앞에서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증언들 또한 모두 분별없는 모순들뿐이잖소!”
순식간에 군중의 시선이 바뀌었다. 나를 내심 존경하던 이들은 곧 분노와 힐난을 퍼붓는 적대자로 돌변했고, 나는 경비병들에 의해 회당 밖으로 쫓겨났다. 니코데모는 내가 쫓겨나는 광경을 보고 카야파와 한나스에게 달려가 호소했다.

“누가 이 모임을 주선했소? 하필 이 야심한 밤을 틈타 한단 말이오? 다른 원로들은 어디 있소?”
끌려 나가던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이 얼마나 추잡한 짓인가!”
회당에서 함께 쫓겨난 뒤, 나는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자네까지 그렇게 나설 필요가 있었는가.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
“…….”
“지금 저 안에 계신 분이, 혹시 자네가 저번에 말하던 그분이신가?”
그제야 니코데모는 나에게 입을 열었다.
“제가 그분을 찾아간 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밤이었습니다……”
차가운 저녁 공기는 매섭게 살갗을 파고들고 있었다. 잠든 그분의 오른손을 한동안 붙잡고 있던 니코데모를 말없이 바라보다, 나는 그분의 왼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창세 48,14 참조).
우리는 그분을 정원 근처의 내 무덤에 직접 모셨다. 아니, 이 무덤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마음을 울렸던 가르침이 다시 나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니코데모가 종을 데려오지 않은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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