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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를 손에 쥐고”
10월 묵주 기도 성월을 맞아, 묵주 기도가 우리 삶에 건네는 위로와 이끄심을 돌아봅니다.
기도하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묵주를 손에 쥐고 한 알씩 넘기다 보면, 어느새 하느님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누군가의 기도에 기대어 다시 일어서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걸어가는 한 신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제 삶에서 기도란, 할 줄 알면서도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신학을 배우고 있지만 기도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하고, 마음과 입이 따로 움직이는 듯 느껴질 때도 있어 시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제게 묵주 기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는 길이 되어 줍니다. 성모송을 한 번, 또 한 번 바치며 묵주알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분께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게 묵주 기도는 제 일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줄 모르던 제게 묵주 기도는 ‘할 수 있는 기도’가 되어 줍니다.
묵주를 들고 걷는 사람들
신학교에서 지내다 보면 묵주 기도를 바치는 이들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대신학교에서는 저녁 7시 10분쯤이면 학사님들이 학교를 돌며 묵주 기도를 바칩니다.
저는 그 시간이 되면 공부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낮게 울리는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들려오는 것이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해진 시간에 함께 묵주 기도를 바치고 저녁 기도를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그들의 일상이 부러워졌습니다.
그래서 학사님들이 성당으로 들어가고 나면 저도 묵주를 들고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묵주를 들고 걷기 시작하니 신학교의 일상 곳곳에서 묵주 기도를 바치는 이들의 모습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부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듯 묵주를 들고 운동장을 걷는 형제자매도 있었고, 등하굣길에 묵주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분들과 묵주를 손에 들고 학교를 거니는 신부님들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신학교에서 지내며 묵주 기도는 특별한 순간에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일과이자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로 듣던 기도를 눈으로 마주하다
그런 모습 가운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1학년 시험 기간의 어느 저녁, 공부하던 중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중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그 소리가 꽤 거슬렸습니다.
결국 밖으로 나가 보니 은퇴하신 두 분의 신부님께서 나란히 걸으며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조금 전까지 두 분의 기도를 그저 소음으로만 여기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날 저는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주님, 귀로 들을 때 거슬리던 소리를 눈으로 마주하니 부끄러워졌습니다. 당신을 향한 기도를 단지 어투와 속도만으로 판단하니, 어찌 오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밖으로 나와 두 분의 모습을 마주하니 그제야 당신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슬리던 소리는 어느새 당신을 향한 찬미의 노래가 되었고, 나란히 걷는 두 분의 발걸음에서는 오래도록 당신을 향해 걸어온 삶이 보였습니다.
저도 그분들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 곁의 누군가와 서로의 발걸음에 맞춰 오래도록 당신을 향해 걷고, 당신을 찬미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같은 소리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제 마음이 달라지자, 그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 묵주 기도는 제게 단지 정해진 기도문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두 분의 신부님처럼 누군가와 발걸음을 맞추며 오래도록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건네준 묵주를 붙들고
제가 늘 스스로 묵주 기도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지쳐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신부님들께서 제게 묵주 기도를 권해 주셨습니다. 한 신부님은 하루 동안 저를 위해 묵주 기도를 바쳤다며 그 묵주를 선물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야 제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붙들어 주고 손에 묵주를 쥐여 주어야 비로소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간도 제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굳건한 마음이나 의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는 누군가의 기도에 기대어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누군가가 건네준 묵주를 붙드는 데서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위해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 제게 그랬듯 저 역시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날에는 마포대교로 향합니다. 한강과 맞닿아 있는 그곳에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서려 있습니다.
노을이 질 무렵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마포대교로 향합니다. 다리를 걸으며 묵주 기도를 바치고, 그곳에서 제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죽음을 생각하는 한 영혼이 있다면, 죽음 대신 다시 한번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자기 생각과 아픔 속에 홀로 갇히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다리 위에 멈춰 선 이들이 다시 발을 움직여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진ⓒ 김윤우
머리로 배운 하느님을 마음으로 만나다
그렇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때로는 그 기도의 대상이 제가 되기도 합니다. 전쟁터 같았던 철학 공부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하느님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신학을 배우고 있지만 또 다른 고민과 마주합니다.
공부를 거듭할수록 머리로 하느님을 알아 가는 것과 그분께 마음을 여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생각이 풀리지 않고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노트북을 덮고 묵주를 들고 밖으로 나섭니다.
당장 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잠시 생각에서 벗어나 그분과 함께 걷기 위해서입니다. 묵주 기도의 신비를 따라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다 보면 머리로 배운 하느님을 마음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수난을 곁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성모님의 마음에도 잠시 머물러 봅니다.
그러다 보면 무엇을 청해야 할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도 굳이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게 됩니다. 같은 기도문을 되풀이하며 그 신비 안에 머무는 동안 이미 기도는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도하고, 다시 걷는 삶
저는 아직도 기도할 줄 알면서도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이제는 기도할 줄 모르겠는 순간에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조금 압니다.
묵주를 꺼내 들고 성호를 긋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묵주 기도가 제 삶의 모든 어려움을 없애 준 것은 아닙니다. 어느 순간 제 삶을 기적처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저는 여전히 누군가가 손에 묵주를 쥐여 주어야 비로소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도에 기대어 제가 다시 기도를 시작하고, 그렇게 시작된 제 기도가 다시 다른 누군가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기도하는 습관이 제 삶에 가져온 기적은 거창한 변화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넘어지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묵주를 쥘 수 있게 된 것, 제 아픔에만 머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묵주알 하나를 더 넘길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하느님께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도 그분을 향해 다시 걸음을 내딛게 된 것. 어쩌면 그것이 묵주 기도를 통해 제가 경험한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묵주 기도는 제가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이어 가고 다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묵주를 들고 걷습니다. 한 알을 넘기며 기도하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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