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대화> 를 읽고..

📚서평

<침묵의 대화> 를 읽고..

하미카엘라

2026. 04. 14
읽음 6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솔직히 당황했다. 관상, 향심 기도, 렉시오디비나… 가톨릭 신자라고는 해도 낯선 용어들이 쏟아졌고, 문장은 읽히는데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천천히, 정말 천천히 읽다 보니 키팅 신부가 결국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네가 생각하는 ‘나’가 진짜 너냐?”
키팅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세 가지에 집착하며 자란다고 말한다. 안전과 안정, 사랑과 인정, 그리고 힘과 통제. 이 욕구들은 어린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것들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항상 신경 쓰이고,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화가 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 키팅은 이렇게 집착으로 굳어버린 모습을 ‘거짓 자아’라고 부른다.


왜 거짓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것이 거짓인 이유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받으려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방어막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는 그 아래에 있는데, 거짓 자아가 너무 두꺼워져서 하느님도, 나 자신도 그 진짜 나를 만나지 못하게 막는다. 읽으면서 불편하게도, 그 모습이 내 안에서 보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 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나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거짓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키팅이 제안하는 것이 바로 관상 기도다. 관상 기도는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말을 멈추고 하느님 앞에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다. 성체조배 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멍하니 있던 그 순간처럼. 생각이 떠오르면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냥 “아, 생각이 왔네” 하고 알아차리고, 짧은 성스러운 단어 하나로 살며시 돌아오면 된다. 그게 전부다. 그 침묵 속에서 거짓 자아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진짜 내가 드러난다고 키팅은 말한다.
키팅 신부는 이 과정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기도 중에 온갖 잡념이 더 많이 떠오르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시간이 길게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건조함 자체가 이미 정화의 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뭔가를 느끼고 체험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위로가 되는 대목이었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오래 남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특히 이런 분들께 권하고 싶다. 미사도 빠지지 않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왠지 공허하고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분, 기도가 점점 습관이나 형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분, 혹은 하느님과 더 깊은 관계를 원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 키팅 신부는 그 답을 거창한 곳에서 찾지 않는다. 말을 멈추고, 침묵 속에 앉아 있는 것 — 거기서 시작하라고 한다.
처음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천천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순간을 위해 끝까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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