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씩

WYD2027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당신을 향한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길

2025.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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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위이잉~”

 

회의를 끝내고 카톡을 확인하면 수십 개의 톡이 나부터 읽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이제 수를 헤아리기도 쉽지 않을 정도의 카톡방들이 생겨서 메시지에 일일이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 젊은이들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라, 한국적 특성을 드러내는 WYD의 영성을 수립해라, 준비 단계의 행사들을 기획해라, 기념품 만들어라, 명동에 WYD 홍보 조형물 만들어라, 참가자들이 머물게 될 숙소와 교리교육 장소도 지금부터 알아보고 준비하도록 해라, 이 모든 것을 주교님들과 관계자들에게 보고를 드려라.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의견을 반드시 경청해라. 어떤 날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건물을 옮겨 가며 다른 회의에 참석하고, 그 회의가 끝나면 또 다른 회의를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회의로 가득 채운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회의 때 내용을 정리하고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시 사항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여 업무를 조정하고, 담당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업무를 조율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침대에 안겨 드르렁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하루가 적어도 3년 동안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몰려와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기도 하다. 나도 일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직장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밀려드는 업무로 인해 조용히 책상에 앉아 글을 읽고 성찰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름 주말 동안 시간을 내어 조용히 산책하거나 등산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려 해도 주중에 지친 몸은 이불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이 업무의 홍수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도구로, 교회의 사제로 그리고 젊은이들의 동반자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어느덧 젊은이 기획단 봉사자들이 기초 양성을 마치고 조직위원회 산하 각 국과 해당 팀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각 팀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지 못한 채, 동반할 사제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봉사자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내가 담당하는 기획사무국 소속 봉사자만 138! 급한 불을 끄듯, 기획사무국의 활동 목적과 특성을 고려하여 8개 팀으로 구분하고 봉사자들을 배치했지만, 아직 그 꼴을 갖추지 못한 채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너무나 화가 나고 두려웠다. 왜 우리는 이 준비를 못한 것일까? 혹시라도 이렇게 준비되지 않는 상황을 보고 젊은이들이 실망하고 돌아서면 어떻게 할까?

 

그렇게 내가 맡게 된 전략팀 첫 모임 날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신부님, 모임 준비하는데 제가 도울 일이 없을까요? 모임 전에 갈 수 있어요!’ 미소가 절로 난다는 표현은 이때 쓰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은 후, 함께 간식을 사고, 자료와 필기도구를 챙기며 봉사자들을 맞이했다. 어색한 눈빛만 서로 주고받던 봉사자들은 일명 얼음장 깨기라는 게임을 하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업무를 이야기하고 임시로 팀장을 정하며, 가장 우선시 되는 기획사무국 전체 연수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여기저기 좋은 봉사자들이 정말 많았다. “제가 할께요!” “저도 할께요!” 물론 좋고 나쁜 봉사자가 어디 있으랴. 그저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봉사자들을 보니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아마도 이 기쁨은 혼자만 해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젊은이들과 그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간과했던 내 자신을 보게 만든 하느님의 은총이리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그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놀라운 단어, ‘함께라는 사실에 새롭게 힘을 얻는다.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청년들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리라.

 

이런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일까? 책상 위에 이해인 수녀님의 시로 꾸며진 탁상용 달력 속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는 짧은 시 한 편에 시선이 닿았다. 마치 나를 위로해 주시고자 꼭 안아 주시는 예수님의 넓은 품처럼.

 

기쁜 일은 기쁘게

슬픈 일은 슬프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낌없이 쏟아 내는

나의 웃음과

나의 눈물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 이해인 수녀, <새가 전하는 말> 중에서

 

주님,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당신을 향한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길 희망합니다. 아멘.

 


 
*WYD에 대한 다양한 소식은 이영제 신부의 블로그 '오다리 신부의 WYD 이야기(https://blog.naver.com/josephleeyj)'를 통해서도 접하실 수 있습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프랑스에서 교리 교육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WYD 법인 사무국 및 기획 사무국 국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 하느님과 기쁘게 만나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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