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아침 미사 중에 울려 퍼진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부지불식간에 완고해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덧 지난해 8월 인사 발령을 받고 시작하게 된 WYD 조직위원회 업무. 너무나 급작스럽게 진행된 인사이동으로 인해 몸과 마음 모두 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고, WYD뿐만 아니라 문화홍보국에 갤러리 관장 업무까지 진행하다 보니 주말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몇 개월이 흘러 버렸다.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고 나름 잊지 않고 꾸준히 기도를 바쳤지만, 마음은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밭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아셨는지, 주님께서는 딱딱하게 굳어 버린 마음 밭에 촉촉이 당신의 말씀으로 생기를 북돋아 주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WYD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때였다.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1997년 파리에서 있었던 WYD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사실 대회가 있기 전, 프랑스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프랑스 가톨릭 교회를 향해 비난과 조소의 기사를 쏟아 냈다고 한다. 전 세계 청년들을 파리로 초대하여 프랑스 교회가 제대로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광고하는 허무맹랑한 대회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대회가 시작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 세계 청년들이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Trocadéro) 광장에 함께 모여 주교님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성당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매체를 타고 전해지자 전국의 수많은 프랑스 청년들이 이 모습을 보기 위해 파리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장관이 연출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회 이후, 그 뜨거웠던 감동을 나누고 키우기 위해 프랑스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함께 모여 기도하고 봉사하는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동이 몰려왔다. 그때까지 청년 사목이라 하면 본당 또는 단체의 사제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교회의 활동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성령께서 청년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불꽃을 일으키시어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동반하고 그들과 함께 걷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WYD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청년들을 찾아오시고, 청년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 곧 사목이리라.
물론 서울의 뜨거운 태양 아래, 100만 명이 넘는 전 세계 청년들이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한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일을 해 본 적도 없고, 또 그러려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WYD를 통해 청년들을 만나길 원하신다. 그리고 지금도 WYD의 순례길을 함께하기 위해 적금을 붓고 있다는 어느 해외 청년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청년들도 주님을 만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제는 그 만남을 위한 겸손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 마음을 고쳐먹자.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고, 내가 아니라 청년들이다.
자주 마음에 새기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주사위는 사람이, 결정은 야훼께서.”(잠언 16,33; 공동번역) 그렇다. 이미 구약 시대부터 하느님 백성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결과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다는 사실을. 하느님을 굳게 믿고 또 청년들을 사랑하며 오늘 다시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주님께 이사야 예언자의 표현을 빌려 겸손되이 고백한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아멘.
*WYD에 대한 다양한 소식은 이영제 신부의 블로그 '오다리 신부의 WYD 이야기(https://blog.naver.com/josephleeyj)'를 통해서도 접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