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들을 위한 교의 신학 길잡이> 시리즈의 아티클로, 이 글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서 이어집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하나의 동일한 신적 본성을 가진다는 교의는 정통 교회 안에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스도와 인간 본성의 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실제적 원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전의 두 공의회는 “성부와 성자는 동일 본질이시다”라는 점을 교의적으로 규정했을 뿐, 그리스도 안에서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의 결합 방식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낳으신 마리아에 대한 교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로부터 시작된 논의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보증하는 요소가 되었고 동시에 육화의 방식을 규정하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육신”을 취하신 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분께서 단지 신적인 의도만을 가지고 계셨다면, 우리 육체보다 훨씬 더 뛰어난 육체로 나타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로 우리의 육체, 곧 “죽을 수 있는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육신 중심으로만 전개될 경우, 그 신비는 축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단지 일반 사람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확보된 사실, 곧 그리스도께서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점을 고백하면서도 그분이 단순한 인간만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선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여인에게서 육신을 받으셨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과 같지만, 동정녀에게서 육신을 받으셨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분의 몸은 단순히 ‘인간의 몸’이 아니라 ‘하느님의 몸’입니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몇몇 지역에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을 품은 어머니’로 신심 안에서 받아들이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칭호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신학적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칭호는 에페서 공의회에서 공적으로 승인되기 오래전부터 신자들의 신앙 안에서 살아 있던 고백이었습니다.
참인간이자 참하느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태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 문제는, 그녀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교의적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부르기로 하였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매우 컸습니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1)는 “신성은 고통받을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죽은 이는 ‘인간 예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의 어머니(Anthropotokos)’ 또는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부활 역시 신성 안에서가 아닌 인성 안에서만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동정녀가 낳은 아들은 단지 인간적 속성만을 부여받은 존재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결국 에페소 공의회에서 단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마리아를 창조주의 어머니가 아니라, 단지 신성을 위한 도구로서 인간 예수를 낳은 존재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예수는 본질적으로 단지 인간이며, 신성이 임시로 머무는 거처에 불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이해한 모태 안의 결합은 실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단지 외적이고 도덕적인 결합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맞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루스(Cyrillus, 376-444)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신성에 속한 ‘참된 아드님’과 인성에 속한 ‘육적인 아드님’으로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한 위격(hypostasis) 안에 신성과 인성이 실질적으로 결합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이 결합은 곧 두 본성 간의 ’속성 교환’(communicatio idiomatum)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참하느님이자 참인간으로 존재하신다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위격의 일치는 동정녀의 태중에서 실현된 것이므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필연적인 신앙 고백이라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두 번째 위격, 곧 성자 하느님의 어머니이므로,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이는 결코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이성과 영혼을 지닌 거룩한 육신과 실질적으로 결합하셨고, 그 육신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말씀께서 육신에 따라 태어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교의는 곧,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으며, 그분은 모태에서부터 참하느님이자 참인간이셨다는 그리스도론의 핵심 진리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여인 마리아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지닌 신학적 깊이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정체성 확립에 머물지 않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동정녀께서 아드님을 잉태하셨을 때, ‘성령으로 충만한 존재’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녀가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합니다.
성령께서는 아드님의 신성을 낳으신 분은 아니지만, 신성이 인간 본성 안에 깃들어 오시도록 개입하신 분입니다. 곧 성령의 작용으로 하느님께서 동정 마리아를 통해 인간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신적 본성을 인간 안에 받아들이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신비 안으로 들어간 인물이며, 성령이 어떻게 인간의 ‘동정 육신’을 통해 신성을 품게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증거가 됩니다.
마리아의 예(fiat)
성령께서 인간을 ‘신화’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은, 그 성령을 받아들이는 피조물의 존엄성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존엄성은 단지 하느님의 일방적 은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조물의 자유로운 응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한 존재로서, ‘완전한 자유’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협력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수락을 통해 은총을 받아들였고, 그 은총은 그녀의 동정성 안에서 열매 맺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능력에서 기원합니다.
따라서 피조물의 존엄성이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로운 협력 속에서 피조물이 행할 수 있는 능력, 곧 성령과의 일치를 통해 신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완전한 모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며, 삼위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그 모상을 완전히 실현한 존재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 피조물에게 바라셨던 모습을 마리아 안에서 완전하게 구현하신 것입니다.
‘신화’란, 하느님의 주도적인 은총과 인간의 자발적인 협력이 만나 이루어지는 존재의 변화입니다. 성령의 모든 활동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의 협력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은총 덕분에, 거룩함을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실제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협력과 참여의 삶은 피조물이 자신의 소명에 충실함으로써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내는 삶이며, ‘신화’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