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부활 팔일 축제 첫날, 전 세계 교회는 가장 기쁜 날에 가장 깊은 침묵을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노래가 울려 퍼지던 그 순간, 우리 시대의 목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이 생애 마지막 발걸음을 떼어 하느님 품으로 향하셨습니다.
죽음은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순간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어쩌면 죽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신 것처럼, 다른 이에게 기꺼이 나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처럼 말입니다.
그분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종들의 종, 빈자의 벗, 거리의 교황, 화해와 평화의 사도, 자비의 교황, 조용한 혁명가, 녹색 교황, 시노달리타스의 수호자 등……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그분의 흔적들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희망을 품어 봅니다.
2013년, 추기경단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 번째 투표 끝에 새로운 교황을 선출했습니다. 당시 교황 바로 곁에 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대교구 추기경이 그에게 다가와 포옹하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 순간, 교황의 마음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고, 그 즉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이는 교황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이름이었고, “가난하고 평화로운 교회”를 향한 상징적인 선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2013년 7월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방문)
2013년, 수천 명의 난민이 목숨을 걸고 배를 타서 람페두사섬으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조난으로 익사하는 비극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심지어 많은 가톨릭 공동체도 이 비극을 ‘남의 일’처럼 여겼고,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교황은 고통 앞에서 중립이라는 이름의 거리 두기를 거부하셨고, 고통 앞에 침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하셨을 당시에도, 누군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세월호 노란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라고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하시며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의 이 말씀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였고,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2013년 7월,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 회견 중)
한 기자가 “성직자 중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교황은
“만약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찾고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동성애자라면,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성적 성향 하나만으로 인간 전체를 단죄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황의 철학은 2023년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문헌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으로 재탄생됩니다. 실제로 동성 커플뿐 아니라 재혼, 동거, 조당 상태 등 어떠한 혼인 상태에 있더라도 이들에게 ‘사목적’ 축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교회는 모두가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어야 합니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교황은 교황에서부터 평신도들에 이르기까지 신 앞에 모두 평등하며, 교회의 봉사자인 성직자가 신자들보다 높을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을 섬기고 그들 안에 계신 성령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황은 '복음을 선포하여라(praedicate evangelium)'라는 교황령을 발표하며 ‘교황청 구조 개혁’에 힘쓰셨습니다. 특히 교황령을 통해 ‘신자라면 누구나 한 부서의 장을 맡을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성직자 중심이었던 교황청 조직에도, 이제 남녀 평신도들이 책임자로 임명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우리의 공동의 집입니다.”(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
교황은 우리에게 환경 정의가 사회 정의와 분리될 수 없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태 위기를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피조물, 하느님 사이의 관계 회복이 필요한 신앙과 도덕의 문제로 보셨습니다. 성경에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삶과 죽음은 자연의 순환 과정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식물은 초식 동물에게, 초식 동물은 육식 동물의 먹이로, 육식 동물의 배설물은 다시 새로운 식물을 자라게 하는 양분으로 순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일어나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2025년 부활 대축일 낮미사 강론)
신비롭게도 교황의 시선과 발걸음은 언제나 약자와 고통받은 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첫 번째 사목 방문은 2013년 성목요일, 대성당이나 유명 성지가 아닌 로마 외곽에 있는 카살 델 마르모(Casal del Marmo) 소년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청소년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김의 모범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교황의 마지막 사목 방문이 된 2025년 성목요일, 5주간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 후 며칠 뒤, 로마 외곽에 있는 레지나 첼리(Regina Coeli) 교도소를 깜짝 방문하십니다. 약 70명의 수감자들을 만나 묵주와 복음서를 선물하며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한결같은 교황의 행보, 교황의 시작과 마침도 언제나 약자들을 향하고 있었음을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비록 하느님 품으로 가신 교황님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지만, 감히 청하오니, 당신께서 남기고 간 희망의 선물들을 우리도 가난하고 고통받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그리고 “선을 행하는 데 지치지 마십시오.”(2022년 사순절 메시지)라고 하신 말씀을 저희도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전쟁과 갈등, 혐오와 적대감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선을 선택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고자 노력하는 희망의 순례자들이 되겠습니다. 교황님, 사랑합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